대인 공포증의 모든 것 : 편집증으로 4

 

발달 단계별로 본 T양의 문제점들: 사람들은 태어나서 각각의 발달 단계들을 거치면서 통과해야 할 과업들이 있다. 이 과업들을 정상적으로 통과를 했는가? 혹은 이 과업들을 통과를 할 때 통과하지 못한 발달 결함들이 있는가? 등을 분석으로 찾아내어서 지금 현재의 문제점들과 연결 시켜서 통과하지 못한 것들과 배우지 못한 것들을 새로 배우고 새로 통과하도록 자아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고로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T양의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발달 단계들로 구분을 해서 체크를 해 보기로 한다. 유아기와 유치원 단계,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 초등학교 고학년 단계, 중학교 단계, 고교 시절과 대학시절의 단계와 현재까지 이다.

유아기 단계와 유치원 시절: T양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는 xxx 대학교 전기 공학과 출신으로 졸업 후 T양의 어머니와 결혼 후에 처가 집에서 장인 장모님과 함께 살면서 전파상을 시작했다. 오빠가 태어나고 6년 후에 T양이 태어났다. T양이 기억에는 0– 3세까지는 어떻게 누가 양육을 했는지?는 기억이 없었다. 단지 T양이 기억이 나는 4세 정도에서 T양의 어머니는 T양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남편의 전파상의 일을 함께 했다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T양에게 무섭고 엄한 사람으로 그리고 외할머니는 T양에게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대소변 등에는 신경을 써 주었지만 T양에게 다정다감하지는 않았다. 외할머니는 T양에게 잔소리가 많은 사람으로 그리고 늘 TV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게 하고 TV 앞에서 놀게 했다. 오빠는 6살 정도 나이차이가 났기 때문에 집에는 없었고 집 밖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것으로 기억이 되었다.

 T양은 어머니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T양은 장난감으로 혼자서 노는 것이 일상이었고 TV를 보는 것 그리고 혼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취미였다고 털어 놓았다. 외할머니는 전기 오븐과 프라이 팬 그리고 고기를 잘라 프라이를 하도록 도와주었고 T양은 늘 고기를 구워먹고 놀았던 것이 회상이 되었다.

  하루는 어머니를 따라 가려고 때를 썼을 때 놀란 아버지가 이후에 강아지 한 마리를 사 주어서 어머니 대신으로 데리고 놀게 했는데 이후에 T양의 강아지는 어머니의 전유물이 되었고 어머니는 그 이후에 잠을 잘 때도 강아지를 옆에 끼고 잠을 자게 되었고 집에서 키우다가 강아지가 3마리나 사고로 죽자 4번째 강아지를 지금도 어머니가 키우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강아지가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 T양은 강아지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어머니가 없을 때 강아지를 해코지를 하고 괴롭혔던 일들을 회상을 했다. 한번은 오빠가 T양과 이야기를 하다가 네가 강아지를 미워하고 싫어해서 강아지가 교통 사고를 당해서 죽었다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유치원 시절에는 큰 문제는 없었으나 어머니는 항상 T양의 옆에 없었다는 것이 T양의 회고였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할 때쯤에 T양의 부모님은 서울의 외곽 지역에서 전파상을 청산하고 고향인 xx로 이사를 갔고 T양은 외할머니의 집에서 나와서 부모님을 따라서 xx 로 이사를 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바지에 오줌을 싼 적이 있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러나 유치원 시절과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시절에는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기억이 나는 이벤트들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T양은 동네에서 몇 명의 여자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았고 그들의 집에서 혹은 T양의 집에서 함께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였다. 오빠와는 늘 티격태격으로 싸우기 일수였고 오빠 한데 지지 않으려고 몸싸움과 욕설도 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오빠와 자주 다투는 T양을 보고 감정을 표현을 하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라는 말에 T양이 오빠와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서 감정을 표현을 하지 않게 된 것이 T양의 문제점을 시작이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 T양은 감정을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분노가 치밀어 올라오면 T양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는 사람이 되었다.

 학급 동료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T양은 그들에게 이기려고 하면 감정을 절대로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이기기 위해서 감정을 참고 표현을 하지 말고 견디어야 한다고라고 굳게 다짐을 하면서 눈물만 흘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동료들과 마음대로 뛰놀면서 감정을 표현하면서 신체적인 긴장이 방출되고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는데 T양은 감정을 억제하고 표현을 하지 않게 되면서 신체적 긴장의 누적으로 점점 동료들과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갔다.

 동료들과 갈등 관계가 되면서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표정을 관리를 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T양의 대인공포증이 표면적으로 등장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T양의 얼굴 표정이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면서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애들아! xx 얼굴 표정을 좀 봐! 이상하지 않아!”라고 T양의 경직된 얼굴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지적을 하게 되자 옆에 있던 동료들이 모두가 T양을 쳐다 보게 되었고 T양은 자연스럽게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더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얼굴 표정과 자세가 되어버렸다.

 이 시점에서 T양은 자신의 얼굴 표정과 부자연스런 태도들을 의도적으로 컨트롤하려고 시도를 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관계에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않고 억압된 감정들을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거나 스스로 긴장된 신체적 감정을 억누르고 일부러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T양의 얼굴 표정과 행동이 점점 이상하게 경직되어져 가게 되면서 T양은 친구들을 멀리하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갔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장난을 치고 놀면서 웃고 떠들면서 자연스럽게 말로써 감정을 표현을 함으로써 우리의 신체적 긴장이 방출되고 그 결과 얼굴 표정이 자연스럽게 되고 경직됨이 풀리고 불편함과 껄끄러움이 사라지는데 T양의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얼굴 표정을 자연스럽게 컨트롤 하려고 시도를 함으로써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고 경직되어진다는 것을 T양이 몰랐던 것이었다.

 T양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억압으로 숨기려고 했기 때문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났을 때 일부러 감추려고 하고 아무런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다가 보니 마음 속에 감정과 얼굴에 표현으로 나타나는 감정 표현이 다르게 되고 갈등이 되면서 내면의 감정과 외면의 얼굴 표정이 일치 하지 않게 되면서 T양이 더욱 더 외면적 표정을 관리하고 컨트롤 하려고 하면서 문제가 점점 커지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생리학적으로 설명을 더 붙인다면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이 자율신경 조직인데 자율 신경이 하는 일은 심장 박동, 호흡 그리고 맥박, 소화 기관 등을 컨트롤하는 신경 조직이다. 글자 그대로 자연스럽게 컨트롤에 맡겨야 하는 신경인데 이것을 의도적으로 컨트롤 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즉 소화 기관을 컨트롤 하려고 하거나 표정어를 컨트롤 하려고 하거나 슬픔, 미움, 분노, 기쁨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에 맡겨서 저절로 표현이 되도록 맡겨야 하는데 이것을 내가 컨트롤 하려고 시도를 하게 되면 근육의 경직과 부자연스러움이 따라오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T양은 자신의 표정이 점점 생각과 달리 이상하게 경직되고 부자연스럽게 되면서 스스로 그것을 숨기려고 조작을 하거나 의도적으로 아닌 체 하고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게 되면서 그녀 스스로 연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내면적으로 화가 나는 것을 외부적으로 화가 나지 않는 것처럼 감정을 속이는 연극을 하고 있다고 치료자에게 스스로 토로 했다.

한번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아버지가 T양을 비난하게 되자 T양은 아버지에게 화가 났지만 화를 숨기고 눈물을 흘리게 되자 울고 있는 T양을 보고 아버지는 연극을 하고 있네라는 말을 해서 T양을 놀라게 했다.

즉 아버지가 T양의 내면의 마음 속을 들려다 보고 그녀가 내면의 마음을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다고 느끼면서 더욱더 T양은 다른 사람들의 비난, 비판에 예민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처럼 모두가 T양 자신의 감정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으로 확신을 하게 되면서 T양은 대인관계에서 더욱 더 자신의 표정관리를 컨트롤하려고 하는 시도가 강화되면서 문제가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T양은 친구가 없게 되었다. 친구들과 사귀게 되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기게 되는데 이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 화, 짜증이 나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얼굴 표정이 경직되어 이상하게 되면서 친구들이 하나 둘 T양의 곁을 떠나버리게 된 것이었다. T양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친구들이 거의 없고 외톨이가 되었다.

 T양은 동료들과 관계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그리고 오빠와 관계에서도 갈등이 생기면 눈물만 흘리고 말을 하지 않게 되면서 부모님과의 관계, 오빠와 관계가 점점 껄끄러워지고 어려워지면서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를 피하게 되면서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T양은 고모네가 남 태평양 아래에 있는 xxx로 자녀들을 위한 이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유학을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었고 부모님이 승낙을 얻어서 xx 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유학 시절: T양이 유학을 가고 싶었던 것은 부모님의 곁을 떠나서 친구들을 떠나서 그리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먼 나라로 가고 싶어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T양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나라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하소연을 했다(이러한 상상은 심한 대인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다, 인간이 없는 세계나 북극 혹은 달 나라에 가서 혼자서 사는 상상들).

고모네 집은 T양과 나이가 비슷한 중학교 학생들 7-8명의 유학생들을 돌보아주고 그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그들의 부모님들로부터 생활 비용을 받아서 그들에게 하숙으로 집과 식사를 제공하고 돌보아주는 일을 함으로써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고모네는 벌써 1년 전에 남태평양의 xx 나라에 와서 한국에서 유학 열풍으로 xx에 유학을 온 학생들을 자신의 집에서 돌보아주고 하숙을 시키고 있었다.

고모네 자녀들은 오빠가 한 명 있고 그리고 T양 보다 1살 어린 여동생이 한 명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늘 T양은 고모네 여동생과 비교가 되었다고 토로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전의 시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모네 여동생보다 T양이 얌전하고 예의 바르고 순종적이라고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대인관계 문제가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고모네 여동생과 비교 대조가 되어 고모네 여동생은 자신감이 높고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대로 표현을 하는데 T양은 연극을 하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게 되면서 여동생에게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T양은 고모네 집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 여동생과 늘 비교 대조가 되어서 고모로부터 자신의 딸은 잘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라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분노했다.같은 집에 살았지만 그 여동생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T양은 그 여동생과 관계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소연을 했다.

T양은 외국에 오면 그녀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유학을 왔지만 그녀의 근본 문제인 대인공포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문제가 커지게 되었다.

고모네 집에는 7-8명의 한국의 중학교 학생들이 하숙을 하고 있었지만 T양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어울리려고 했지만 어울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번씩 파티가 열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임에 같이 어울리지 않는 T양을 보고 고모네가 T양에 너는 왜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렇게 외톨이가 되어서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다그치는 고모가 미웠다. 그러나 T양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 유학을 왔을 때 고모네는 T양을 사립학교에 입학을 시켜주었다. 그런데 학비가 많이 들어가자 T양은 공립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T양의 의사를 물어 보지도 않고 고모가 마음대로 T양을 전학을 시켰다. T양이 약 1년 정도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외국인 친구가 한 명 정도 사귈 수 있게 되었을 때 고모는 T양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결국은 T양은 외국인 친구를 한 명도 제대로 사귈 수가 없게 되었다고 고모에게 분노했다.

Xx에서 3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면서 T양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모의 강압으로 3번이나 전학을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기 어려웠고 학교에 적응을 하려고 할 시점에서 또 다시 전학을 시키는 바람에 적응이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된 것이었다.

처음 유학을 왔을 때 언어에 대한 준비가 없이 유학을 왔기 때문에 T양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방과 후에 영어 어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원어민 강사가 영어를 가르쳐주었는데 고모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간다고 하면서 한국인 영어 강사로 바꾸어버렸다는 것에 분노했지만 T양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번은 저녁에 먹고 싶은 과자가 있어서 부엌에 나가서 과자를 접시에 담고 있는데 고모가 부엌에 나와서 마주치게 되었다. T양이 접시에 과자를 담고 있는 것을 본 고모는 설거지를 다 해서 접시들을 닦아 놓았는데 너는 고모가 또 설거지를 하도록 만드느냐? 라는 고무의 질책을 듣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고 토로 했다. 고모는 저녁 식사 후에 그녀가 설거지가 끝나면 T양이 먹고 싶거나 군것질을 하도록 허용해주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한번은 한국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고모가 T양에게 전화기를 바꾸어주었는데 T양이 부모님과 말을 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들고 울고만 있어서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T양은 유학을 가서 한 학기가 끝나는 시점이 되면 설사와 복통으로 1주일 혹은 2주일씩을 매년마다 휴학으로 쉬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과도한 긴장 때문에 신체의 한계점이 넘어가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분석으로 지적을 해 주었을 때 T양은 시인을 했다.

 사실은 T양은 유학 시절에만 한 학기 말에 1주일 혹은 2주일씩 휴학을 한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유학 직전의 중학교 1학년 때에도 학기 말이 되면 1주일 혹은 2주일 정도를 휴학으로 쉬었다고 실토를 했다.

 T양의 3년 동안의 xx에서 유학 생활은 T양에게 고통스런 경험만 제공했다. 추억이나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외국에서 사귄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한국에 귀국해서 xx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xx에서 3년 동안 유학생이었다는 소개에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T양은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몰랐고 친구들을 피해 다녔다. 고등학교 초반기에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의 점포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T양이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많아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에 T양이 충격을 받게 되었다.

 수학에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는 오빠의 친구를 수학 가정 교사로 붙여주어서 수학을 공부하도록 도와주었다. T양은 외국 유학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T양이 알고 있었다.

 치료자는 T양이 과도하게 예민해서 불안이 가중되어 긴장 방출이 되지 않고 억압되어져 있어서 뇌의 회전이 잘 안되고 잘 잊어버리거나 실수를 연발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을 해 주었다. 과도한 긴장은 뇌의 회전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T양이 모르고 있었다. 정신분석 학자들이 늘 주장을 하는 경구로써 긴장이 이완 되어 마음이 안정이 될 때 뇌의 회전 능력이 최대가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T양의 긴장을 방출시키고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치료에서 제 1차 과제임을 깨닫게 했다.

 다행히도 T양과 비슷한 한 예민한 여학생과 단짝이 되어서 고 2학년과 고 3학년 시점에서는 그녀와 늘 함께 다니면서 고등학교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T양은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서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방과 후에 미술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그림 공부를 시작해서 고 3학년 여름 방학 때 스트레스 때문에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에게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을 했다가 지금 이 시점에서 힘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라는 충격적인 말에 놀라서 수능 2개월을 앞두고 미술 학원을 그만 두고 대입에서 미술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Xx 대학에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을 해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자퇴를 하고 1년 동안 재수를 해서 그 다음 해에 xx 대학 생물공학과에 입학을 했느냐 중간 고사 때 스스로 휴학 계를 내고 말았다.

 T양은 국내에서 동료들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동료들이 그녀를 거부하고 미워한다는 핑계로 해외 유학으로 낯선 나라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그녀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나 해외 유학에서도 대인관계는 전혀 개선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대인공포증의 홈 페이지를 보고 대인공포증을 치료를 받기 위해서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지금까지 T양의 발달 단계를 스크린 해 본 결과 T양은 유아기 때 엄마로부터 애착의 형성 과정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T양의 어머니는 심한 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도 신경증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T양이 귀띔해 주었다.

 T양의 어머니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을 하는가?를 몰랐기 때문에 T양을 그녀의 어머니에게 양육을 맡긴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가 전파상을 했을 때 어머니는 남편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핑계로 T양의 양육을 피한 것이 분명했다. 만약에 남편의 사업의 일손이 부족하면 한 사람을 고용을 하면 될 것을 돈을 번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남편의 도우미로 자청을 한 것이었다. 물론 고용 비용으로 돈이 나가는 것을 그 돈을 절약을 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뛰어든 것은 이해가 되지만 T양에게는 불안한 애착의 형성에 일차적인 책임은 어머니가 분명했다.

 그 증거로써 T양이 중학교 3년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귀국 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T양을 어머니 옆에서 잠을 자도록 해서 T양이 분노해서 거부한 것을 이야기를 했다. 더 붙여서 어머니는 4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 대신으로 강아지를 사 준 것을 어머니가 그 강아지를 가로채서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강아지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T양은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하는지?를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한 것이다. 한번씩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어머니에게 호소를 하면 어머니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오히려 T양에게 그 대답을 물어보는 것이 분통을 떨어뜨렸다.

치료의 과정 1: 위의 발달 단계에서 생긴 결함들을 치료의 과정에서 하나씩 재연해서 치료자가 T양의 어머니 역할을 하면서 T양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T양의 불안을 흡수해서 T양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과정이 일차적인 치료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말을 해도 치료자가 그것을 흡수해주어야 한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지오바치니(Geovacchini, 1999) 는 성격장애와 정신분열증의 치료 과정에서 정신분석 치료사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시골에서 황소를 키울 때 그 황소가 말뚝에다 몸을 비비고 떠 받고 나무에 화풀이를 해도 그 말뚝이 끄떡도 하지 않고 그 황소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그 말뚝의 자세가 바로 정신분석 심리치료사의 자세임을 치료자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짜증과 어떤 화풀이에도 치료자가 흔들리지 않고 수용하게 될 때 T양의 마음이 치료자의 반사된 마음으로 안정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강조를 하고자 한다.

치료의 과정 2: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해야 긴장이 방출되고 말로써 감정을 표현을 해야 의사 소통의 능력이 배양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치료자는 T양이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그것을 울음으로 표현을 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치게 했다. 치료자는 T양이 초등학교 4학년의 시점에서 어머니가 한 말 감정을 표현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충격을 받아서 그 시점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자아가 성장이 중지된 것임을 지적을 하면서 그 시점에서 성장이 중지된 감정적 자아를 다시 성장을 하도록 도와서 T양의 나이에 걸 맞는 감정 표현으로 성장을 시키는 것이 치료의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치료의 과정 3: 동료들과 갈등 관계를 다시 치료실에서 재연해서 그 때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도록 했다.

재연 1: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친구가 T양의 부자연스런 경직된 자세를 보고 동료들에게 흉을 본 사건을 다시 재연해서 말로써 표현을 하도록 했다.

  Xx! 나는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친구들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내 감정을 표현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게 되었어! 내 마음 속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내가 너희들과 갈등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되면 너희들이 나를 싫어하고 떠나버릴 것 같아서 너희들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을 내가 깨닫지 못했어!

이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내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내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분노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눈물을 흘리거나 그 대상과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말로써 소상하게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해야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고로 이제부터 나는 너희들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 속의 고민들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내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되었으니 너희들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과거의 T양과 다른 사람이 되었어! 그러니 나의 과거의 행동으로 나를 지금의 행동과 비교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심리치료를 받아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되었어! 그러니 당연히 나는 과거의 나인 T양과는 지금의 T양은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네가 이해를 해 주었으면 좋겠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긴장이 증가하고 그 결과 불안이 가중되어 심한 불안 상황이 되면 뇌가 연결이 끊어지고 기억이 나지 않고 실수를 연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내가 내 얼굴 표정과 내 행동을 의도적으로 컨트롤하려고 하면 자율 신경계의 작동을 조작하게 되어 오히려 얼굴 표정이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워지게 되어 너희들에게 이상한 아이로 낙인이 찍힌 것을 깨닫게 되었어! 내 마음 속에 감정을 숨기려고 나는 지금까지 연극을 해 온 것을 깨닫게 되었어!

즉 나는 내 마음의 불안, 긴장, 짜증, 화 등을 감추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나는 컨트롤 하려고 의도적으로 거짓으로 행동을 해 온 것을 깨닫게 되어서 내 마음과 내 행동이 겉과 속이 같아서 표정이 자연스러워지고 경직됨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재연 2: 치료실 안에서 치료자와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2시간씩 대화를 하면서 약 2년의 기간이 흘러가면서 T양은 이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자아가 자라나기 시작을 한 시점에서 초등학교의 한 친구와 연락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다.

이벤트 1: 고등학교 시절에 한 여자 친구가 T양의 주소를 알고 찾아와서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었을 때 T양은 대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놀고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친구가 한심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허송 세월로 보내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아서 눈물을 흘리다가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 장소를 옮겨서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두 사람이 조용한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서 T양이 지금까지 치료실에서 배운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대인공포증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학교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자퇴를 했고 그리고 지금은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 피아노 교사가 되어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T양이 지금까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왜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았는지?를 솔직하게 털어 놓고 4시간에 걸쳐서 모든 이야기를 치료 회기 시간에 의사 소통 훈련으로 배운 것을 그대로 실토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친구는 T양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고 그녀 자신도 대학을 졸업하고 xx TV 방송국에 PD로 일을 하다가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그 직책을 그만두고 지금은 xx대학교에서 조교로 일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틀어 놓아서 서로 분위기가 좋아지고 T양의 늘 느껴왔던 대인관계에서 긴장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어 두 사람이 인근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즐기다가 헤어졌다고 털어 놓았다.

이벤트 2: 그녀가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기 직전에 치료 비용이 약간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알게 된 1살 아래의 여자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녀와 자주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며 지내다가 그녀가 최근에 일을 그만 두고 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이 인근에 있는 워터 팍 물놀이 장에 가게 되었다.

물놀이 장에서 약 4시간 동안 물놀이를 하고 나서 같이 식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을 치료실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T양이 대인관계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할 때 T양 자신의 어려움들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대인공포증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대학을 두 번이나 자퇴한 것 등의 T양의 열등감들) 이야기를 하면서 생후 처음으로 따뜻한 인간관계를 하게 되었다는 T양의 이야기에서 치료자는 T양의 대인관계가 점점 개선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그녀와 몇 번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같이 식사를 하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벤트 3: T양이 거주지를 옮기는 문제로 오빠와 통화를 하면서 무려 4시간 동안 말로써 설전을 한 것을 치료실에서 털어 놓았다. 오빠가 T양이 새로 산 침대를 조립을 하는데 도와주지 않고 미룬 것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 놓으면서 오빠의 비난에 과거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입을 다물어버린 것이 아니고 이번에는 하고 싶은 말들과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을 했다.

오빠는 과거처럼 T양을 비판, 비난하고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맹공격을 퍼 부었다. T양은 지지 않고 오빠는 부모님처럼 항상 T양을 비난하고 비판을 해 온 것을 하소연을 하는 오빠의 그러한 비난과 비판 때문에 T양의 자아가 비관적으로 비판적이 된 것을 치료실에서 알게 되었다고 오빠에게 하소연을 했다. 과거에 오빠가 T양에게 서운하게 했던 것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오빠가 코너에 몰리게 되면서 수세적인 자세로 된 것에서 통쾌하게 기분이 좋았다고 실토를 했다.

 이후에 오빠는 T양의 자기 표현이 과거와 달라진 것을 인정하고 심리치료의 효과를 스스로 인정을 해 주었다. 부모님에게 여동생의 계속되는 심리치료의 비용을 지원해주도록 도와주었다. 특별히 심리치료 초반기에 부모님이 심리치료사에게 유혹을 당해서 T양이 치료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제거해 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심리치료사의 실력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부모님에게 설득을 해서 치료 비용을 지원해 주도록 도와주게 되었다.

재연 3: 유학 시절에 고모로부터 받은 심리적인 상처를 재연해서 그 시점에서 표현을 하지 못한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의사 소통 훈련을 재개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함으로서 긴장 방출과 말로써 표현을 하는 의사 소통의 능력의 향상이 함께 숨어있다.

고모님! 고모는 부모님 대신으로 나를 돌보아주고 나를 보살펴주기로 부모님과 약속을 했는데 그리고 부모님이 생활 비용을 고모에게 보내주어서 돈을 받고 있으면서 왜 내가 저녁 식사 후에 간식을 먹고 싶다고 부엌에 들어가서 과자를 접시에 담고 있을 때 고모가 설거지를 마쳤는데 또 접시를 사용해서 고모의 일거리를 만들고 고모를 귀찮게 하느냐? 라고 나에게 호통을 쳤는데! 나는 억울합니다.

 내가 생활 비용을 고모에게 매달 지불하고 있는데 왜 내가 고모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어야 합니까? 고모가 내 눈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먹고 싶은 과자를 저녁 식사 후에 먹을 수도 있고 언제든지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설거지를 하고 나서 내가 새로 접시를 사용한 것은 보고 왜 나를 비판하고 처벌을 했습니까? 그것은 고모의 일거리가 하나 늘었다고 나를 처벌한 것이 아닙니까? 나는 고모의 손님이지 내가 고모의 고용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먹고 싶거나 마시고 싶은 것을 왜 고모의 허락을 맡아야 합니까?

 두 번째 내가 이곳에 왔을 때 고모는 사립학교에 입학을 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립학교에 학비가 비싸다고 나를 1년에 한번씩 3번이나 전학을 시켰습니다. 학비 문제는 처음 입학을 했을 때 이미 한 학기에 그리고 일년에 비용이 얼마나 들어간다는 계산을 해서 사립학교에 입학을 시켜 놓고 그리고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내 의사 결정을 무시하고 고모가 마음대로 나를 이 학교 저 학교로 전학을 시켰나요? 내가 적응을 해서 겨우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시점이 되어서 나를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키는 바람에 나의 대인공포증 문제가 더욱 더 악화 된 것에 대한 책임이 고모에게도 있습니다.

세 번째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방과 후에 영어를 배우도록 해서 원어민 강사 선생님에게 배우다가 고모가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나를 한국인 강사 선생님에게 배우게 했습니다. 외국에 와서 한국인 영어 회화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게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원어민이 없어서 한국인 강사 선생님에게 영어 회화를 배운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외국에 유학을 와서 한국인 영어 강사에게 영어 회화를 배운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결국은 부모님이 보내준 생활 비용과 그리고 학비를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나의 의견을 무시하고 나를 고모님의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다루었다는 것에 나는 분노하고 미칠 것 같습니다. 고모는 그 돈을 절약해서 고모가 호주머니에 착복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유학 초기에 그러한 사립학교 학비와 원어민 영어 회화 강사 비용 등을 다 고려해서 부모님으로부터 학비와 생활 비용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고모는 그 돈을 절약해서 고모의 호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압니까? 나도 그러한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습니다.

이벤트 4: T양의 부모님과 관계는 점점 개선되어져 갔다. 특이한 것은 T양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T양의 생일날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한번도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거나 혹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기억이 없다는 것에 치료자가 깜짝 놀랬다. 가족 구성원들의 생일은 그냥 모르고 지나갔는데 T양은 그것을 몰랐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반 친구들이 생일 축하를 하면서 선물을 사 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어버이 날에 부모님에게 선물을 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서 어버이 날에 아버지에게 축하 선물을 사가지고 나서 선물을 드렸을 때 아버지가 돈도 없으면서 왜 그런 것을 사왔느냐?”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생일 혹은 어버이 날에 선물이나 축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부모님의 어린 시절에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할아버지와 할머니) 생일 축하를 받았던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60세를 맞이해서 회갑 잔치를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이번에 아버지에게 회갑 때는 생일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를 해 가지고 고향에 갈 것을 이야기를 했을 때 T양은 아버지에게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해 간다고 해도 아버지가 기쁘게 받지 않는 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이제 과거와 달리 새로운 것을 배웠으니 T양이 변화를 하는 것은 T양 자신을 위한 것이지 부모님을 위해서 변화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과거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생일날에 부모님이 케이크와 설문을 주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면서 온 가족들이 기뻐하는데 T양의 집에서는 생일 축하가 빠져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 생일 날에는 서로 축하는 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생일 축하 케이크와 선물을 사가지고 고향을 방분을 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T양은 치료 초반기에 어머니에게는 치료실에서 분석한 내용들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와 껄끄러운 관계가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아버지에게는 1 - 2년 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번 아버지 생일 사건으로 특별히 아버지에게 감정을 표현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갈등 관계가 좋은 관계로 변화 되어지기 시작을 했다.

재연 4: 부모님에게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치료자와 나눈 어린 시절의 상처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눈물을 흘리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하도록 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어린이의 눈 높이에 맞추어서 부모님이 어린 아기가 되어서 놀아주고 안아주고 아기들의 스트레스를 흡수해주어야 아기가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고 이것이 안정된 자아 감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T양의 어머니는 양육을 할머니 손에 맡기고 남편을 따라서 일을 하러 갔고 그리고 T양의 부모님은 T양의 유아기와 유치원 시절에 부모님의 눈 높이에 맞추도록 강압과 강요를 했기 때문에 T양은 늘 긴장되고 부모님과 관계에서 편안하지 못한 것을 지적을 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 앞에서 기분이 좋은 일이나 기분이 나쁜 일이나 간에 마음대로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자신감이 강한 자아로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동료들과 관계에서도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이해를 하게 되었다.

T양의 부모님은 T양의 불안을 흡수해서 긴장을 풀어 주고 자아의 안정을 유지하도록 해주어야 했는데 T양이 오히려 어머니 자신의 불안을 T양이 흡수를 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을 지적을 하면서 이러한 치료 회기 시간에 치료자로부터 배운 의사 소통의 지식들과 양육과 발달의 과정에서 잘못된 것들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눈물을 흘리지 말고 표현을 하도록 장려 했다.

치료자는 부모님 앞에서 내 마음 속의 부정적인 감정들 즉 분노, 미움, 짜증, , 노여움, 적대감정 들을 마음대로 부모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부모님 앞에서 그러한 감정을 표현을 하는 것에 껄끄러움이 없을 때 비로소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즉 동료나 직장 상사들 앞에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강조를 하면서 T양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수용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과 직면을 하는 빈도수가 많아지게 되어갔다.

 이후에 3년 동안 T양은 1차 적으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인정과 동의를 얻게 되면서 이제는 어머니 한데서는 어떤 이야기로 할 수 있고 어머니 앞에서는 긴장을 하지 않는 관계로 발전이 되어져 갔다 그러나 아버지 한데서는 아직도 아버지의 눈치, 비위를 살피는 빈도수가 많은 것을 지적을 하면서 아버지 한데도 어머니처럼 마음대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아버지에게 화, 분노, 짜증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빈도수가 늘어나면서 아버지 앞에서 긴장을 하는 관계가 감소되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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