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모습  

 

 과거는 살아 있다 9

 

과거는 살아 있다 제 Ⅸ부에서는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아서 정신분열증이 된 50대 후반의 부인 M씨가 어떤 치료의 과정을 거쳐서 회복이 되었는가?를 소개를 하고자 한다.

 심리치료에서는 마음 속에 억압되어져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 즉 분노, 짜증, , 노여움, 적대감정 등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심리상담, 심리치료를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고안하기 이전에 프로이트는 최면학을 공부를 했었고 최면학이 심리치료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치료 기법으로 고안을 한 것이 정신분석 치료이다.

 최면학의 원조는 동물 자석 이론 혹은 동물 자장 이론으로 1772년에 메즈머(Mesmer)에 의해서 발견이 된 것이다. 이 자석 치료 이론(magneticism)17세기 과학의 등장과 함께 등장한 18세기의 계몽주의의 부산물로써 학교가 설립되고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어가면서 중세의 귀신 이론, 영혼 주의적인 미신, 무지,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정신이 이상하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악마, 마귀 혹은 귀신의 소행으로 보고 귀신을 쫓아내는 굿을 하거나(케토릭에서 엑소시즘 행위, exorcism) 혹은 잃어버린 영혼을 몰아 내거나 혹은 불러 들이는 샤만(무당)들의 마술적인 행위 의식(儀式)으로부터 귀신, 마귀, 악령들의 소행이 아니고 정신의 병, 마음의 병이 들어서 치료를 해야 하는 병든 마음의 치료의 이론으로 등장한 이론이 메즈머(Mesmer)의 자석이론 혹은 자장이론이다(Ellenberg, 1970).

 이후에 자석 치료 이론은 건강한 사람의 몸의 유체가 병든 사람으로 이동을 하면서 치료가 된다는 메즈머(Mesmer)의 유체 이론에서 유체가 아닌 에너지 이론으로 즉 마음의 에너지 이론으로 그리고 자석의 힘에 의해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석 치료사의 제시(suggestion)의 힘이 핵심 요소라는 것이 한 개씩 밝혀지면서 영국 만체스터의 외과 의사 브레이드(Braid) 1843년에 최면(잠과 유사한 상황에서 서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그리스의 잠의 여신 hypno의 이름에서 유래)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면서 최면 치료(hypnosis) 이론으로 바뀌게 된다. 이 최면 치료가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마음이 병든 환자인 히스테리아(hysteria) 환자를 치료하는 핵심 치료 이론으로 전 유럽을 휩쓸게 되었다(Ellenberg, 1970).

 20세기가 등장하면서 최면으로 치료를 하고 있던 치료사들이 최면 치료의 효과들이 증세를 도발해서 증세를 표출시키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카타르시스(카타르시스는 그리스어로 설사라는 뜻)가 최면 치료의 효과의 핵심임을 밝혀내면서 억압된 감정들을 울고 불고 말로써 표현을 하게 되면 감정이 방출되면서 따라오는 마음의 정화 효과라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에다 이런 치료 이론들이 정신증 환자들(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치료로써 응용되어지면서 카타르시스 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린 시절에 내면 속에 상처받아서 고착된 아이디어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알고 그 아이디어에 집착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야 한다는 이론이 등장(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피에르 장(Pierre Janet의 이론)하게 되면서 프로이트가 이 이론을 통합해서 정신분석으로 탄생을 시킨 것이다(Ellenberg, 1970).

 위의 이론을 약간 이해를 하면 다음의 M 부인의 치료의 과정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M부인은 4살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되자 어머니가 M 부인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재혼을 하게 되었다. 고로 M부인은 11살 때까지 외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M부인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심리적인 어려움이 없었다.

 어머니가 11살 된 초등학교 4학년인 M부인을 어머니가 재혼한 가정으로 불러 들이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을 했다고 스스로 시인을 하고 토로 했다.

분석 1: 왜 하필 11, 초등학교 4학년의 시점에서 어머니가 M부인을 재혼한 친가로 합류를 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M부인은 그 이유를 어머니가 재혼으로 몇 년의 안정된 기반이 형성되면서 전 남편의 소생의 자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계부의 허락을 받아서 친가로 합류하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을 했다.

만약에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은 빠르면 1년 혹은 2년 혹은 늦어도 3년 정도면 충분한데 왜 7년이란 세월이 지나간 후에 11, 초등학교 4학년이 된 M 부인을 재혼한 가족의 품으로 합류를 하도록 했겠는가? 라는 물음에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M부인에게 어머니의 재혼 가정에 합류를 하고 나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는지? 행복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50대 후반의 부인 M씨는 고래를 가로저었다. 모든 문제는 재혼 가족에 합류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M부인에게 그녀가 재혼한 어머니 가족으로 합류를 하고 나서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M부인은 어머니의 재혼 가정으로 합류를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4살 된 큰 여동생과 2살 된 남동생 그리고 1살 된 여동생을 돌보아주는 일이었다고 했다. 이후에 막내 남동생이 태어나서 M부인이 그들을 모두 양육을 했다고 했다. M부인은 그들에게 실제로 엄마처럼 역할을 해서 둘 째 남동생은 어린 시절에 그녀에게 그가 어른이 되면 큰 집을 지어서 누나와 함께 살 것이라고 종종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무엇을 했는지? 물었을 때 어머니는 부동산 사업을 했기 때문에 자녀들을 양육을 할 시간이 없었고 계부는 경제력이 없어서 비어 홀, 카페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용돈 벌이 정도의 능력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와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늘 집을 새로 건축해서 그것을 팔아 번 돈으로 혹은 부동산을 사고 팔아서 남는 차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했다. 고로 어머니는 사업 때문에 4명의 자녀들을 돌보아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4명의 자녀들에게 어머니 역할을 한 사람은 M부인 자신이었다고 했다.

 자녀들을 돌보는 일 이외에도 M 부인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그리고 어머니의 사업에 돈 심부름 등을 했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빚쟁이들이 몰려 오면 어머니는 피신해버리고 M부인이 그들을 대면을 해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11살 된 초등학교 4학년의 딸인 M부인을 어머니의 재혼 가족으로 불러 들인 것은 이제 이해가 될 것이 아닌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M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가 M부인을 가족들을 돌보고 심부름을 하고 밥과 빨래 등을 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재혼 가정으로 불러 들였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가 된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어머니는 전 남편의 소생으로 11살 된 딸이 밥을 짖고 빨래를 하고 심부름을 하고 그리고 자녀들을 양육을 할 수 있는 최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딸을 데리고 와서 집안 일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한 능력이 생길 때까지 11살 때까지는 어머니의 재혼 가족에 합류를 하도록 허용해주지 않았다. M부인을 심부름을 시키고 동생들을 돌보게 하고 부엌일을 하도록 할만 한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11살 때 M부인을 재혼 가정으로 끌어들인 것이 아닌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M부인은 시인을 했다.

이 시점에서 M부인은 울면서 통곡을 하면서 나는 친 어머니에게 사육을 당했다라고 외쳤다. 다시 말해서 소와 개, 돼지처럼 밥만 먹여주고 잠만 재워준 것이라고 토로 했다. 자신을 부려먹고 나쁜 말로 식모살이(옛날에 가정부의 이름)을 시킨 것이라고 토로 했다. 나이가 11살 정도 되자 집에 데리고 와서 부려먹을 만한 능력을 가진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M부인을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된 것이었다.

위의 분석을 지지해줄 수 있는 증거들은 많았다.

 증거1: 어머니는 늘 딸인 M부인에게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 “너만 없었더라면 나는 이 보다 더 좋은 남편을 만났을 것이다” “너는 나에게 혹이다”, “너는 내 삶에서 장애물이었다라고 입 버릇처럼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여기에 더 붙여진 것은 너는 이 엄마에게 고마움을 어른이 되어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 “엄마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고아원에 갔을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해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줄 터이니 너는 나를 믿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이렇게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부인 M씨는 어머니가 M 부인을 세뇌 시켜서 어머니가 시키는 일에 복종하고 부응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했다. 혹시 M부인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성이 성장과 발달을 하게 되면서 어머니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까? 늘 세뇌를 시킨 것이 분명했다.

증거 2: M부인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이러한 가르침에 항상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어서 직장에서 돈을 벌어서 적어도 1명 혹은 2명의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라고 결심을 하고 대학을 포기하고 빨리 직장을 얻어서 돈을 벌어서 계부에게 한 푼도 떼지 않고 돈 봉투 채로 받쳤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머니가 M부인에게 하는 행동과 계부가 자녀들에게 하는 행동이 완전히 다른 데서 조금씩 어머니가 재혼해서 낳은 자식들을 한층 더 편애를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M부인이 결혼을 할 때 어머니가 낳은 친딸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믿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M부인은 남편도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는 중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기에다 남편은 3살 때 엄마를 잃어버리고 계모 밑에서 자랐다는 것 그리고 돈도 없는 빈털터리 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머니를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이 엄습했다고 했다.

증거 3: M부인이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펜팔로 1년 동안 사귄 육군 소위가 전역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을 찾아와서 1년만 여유를 주면 결혼 자금을 만들어서 M부인과 결혼을 할 수 있으니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 계부는 펄쩍 뛰면서 연애하면 칼 맞는다””직장에 다니는 줄 알았는데 무슨 연애 질이나?”라고 일언 지하에 거절했고 그 청년은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갔다.

그 후에 자신의 여동생은 연애를 해서 그 남자 친구의 학비를 대주기 위해서 그녀가 키우고 있는 젖소들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한 마리씩 팔아 갔고 그리고 이후에 결혼 시에 사위에게 아파트를 사주기 위해서 남편과 M부인이 피땀으로 일구어 놓은 농장에서 쫓아낸 것을 알게 되면서 분노했다.

증거 3: M부인이 고등학교 졸업할 시점에서 계부는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 라고 해서 M부인은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를 하고 가정 사정을 돕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매달 월급 봉투를 그대로 계부에게 갖다 바쳤는데 계부는 한번도 월급 봉투에서 차비, 점심값으로 용돈을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동생들은 다 대학에 갔고 용돈을 받는 것을 보면서 심한 편애와 차별 대우를 몸소 느꼈다고 털어 놓았다.

증거 4: 어머니가 자녀들의 양육과 빨래와 식사 준비를 위해서 11살 된 나를 집으로 불러 들여서 식모처럼 부려먹고 그리고 나이가 많아 지면서 큰 딸이 대학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큰 딸이 결혼을 할 때 가족 환경에 대한 정보가 전남편의 딸이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부인 M씨를 제거하기 위해서 밀린 똥차 지우듯이(부인 M씨의 표현) 시집을 서둘러서 보내게 된 것이 바로 사위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냥 부인 M에게 최고의 배우자로 속이고 시집을 보낸 것에 대한 사기를 쳤다는 분노가 결혼 직후에 부인 M씨의 마음 속에서 미움과 증오가 싹이 자라나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은 정신분열증의 단초가 된 것이었다.

분석 2: M 부인의 자아가 11살 때 성장이 멈추어버린 것이다, 자아의 성장이 중지된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신체는 나이에 따라서 성숙과 성장을 해서 점점 커지게 되는데 마음인 자아도 나이에 걸맞게 성장을 하게 되는데 상처를 받게 되면 그 자아가 성장이 그 자리에서 멈추어버린다는 고착(fixation) 이론을 생물학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실제로 M부인은 11살 때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의 가족으로 합류가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M부인은 11살 때까지는 학교생활, 동료들과 관계 그리고 감정의 표현 등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외할머니는 술을 드시면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두 명의 아들에 대한 애도의 실패로 통곡을 하고 우는 버릇이 있었다. 이 때에는 손녀인 M 부인이 외할머니는 달래주고 토닥거려주어서 두 사람은 의사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M부인은 외할머니 한데 마음대로 감정을 표현을 하고 마음대로 이야기를 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토로 했다.

증거 1. 어머니의 재혼한 가족구성원들과 합류하게 된 M부인은 7살 아래의 여동생인 4살 된 여동생에게 한번도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는 것은 재혼한 부모님의 비위,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초등학교 4학년의 자아는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성장하지 못하고 새로운 가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7살이나 어린 여동생에게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었다는 것이 아닌가!

증거 2: 어머니의 집에 들어간 이후로는 한번도 자신의 주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통신표에 보호자인 계부의 성()씨와 부인 M씨의 자신의 성()씨가 다른 것 때문에 방과 후에 M부인의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대문 앞에 문패를 보고 성씨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M부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놀래서 도망을 간 사건에서 자신의 고민을 어머니 혹은 계부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합류를 한 시점에서는 친구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런데 그 친구가 놀라서 그녀부터 떠나고 난 이후에는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는 것이 자아가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한 증거가 아닌가!

증거 3: 결혼을 한 후에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어머니에게 섭섭함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마음 속으로 불평 불만들이 쌓여가면서도 M 부인은 한번도 그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에는 마음 속에 불평과 불만들을 한번도 어머니에게 토로하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자아가 4학년 시점에서 나이에 걸맞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증거 4: 7년 동안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남편이 직접 땅을 파고 흙으로 매워서 옥토를 이루어 놓았을 때 어머니는 어느 날 M부인 가족들을 하루 아침에 내 쫓았다. 7년 동안에 늘 인부를 고용해서 너희들을 관리 감독을 하면 된다 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 놓고 어느 날 그들을 내 쫓아버렸을 때 어머니에게 미움과 분노와 서운함을 제대로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부인 M씨의 자아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어머니의 가족으로 합류를 하면서 더 이상 성장과 발달을 하지 못하고 11살의 나이로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어머니의 세뇌로 자아가 성장이 중지가 되어서 어린 시절의 11살의 나이의 자아로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시키는 일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잘 따르고 말을 잘 듣는 착한 11살의 딸로 남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어머니가 M부인을 위해서 알아서 다 잘 해줄 것이고 믿고 있는 11살의 자아가 아닌가? 그 이후부터 어머니의 모순적인 행동과 계부의 편애에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나이가 30 40 50대로 먹어갔지만 M부인의 자아는 11살의 초등학교 4학년의 수준에서 멈추어버리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30, 40, 50대의 나이를 먹어갔지만 내면의 세계 속에서는 M부인은 11살의 착한 어린이의 자아로,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착한 딸의 자아로 남아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편애와 불평등과 비합리적인 것을 느끼면서도 말을 할 수 없는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없는 표현력을 상실한 11살의 나이로 평생 동안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문제는 이러한 것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것이 쌓여서 정신분열증으로 발단이 된 것이라는 점이다.

분석 3: 부인 M씨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지금까지 그녀가 재혼 가정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고민, 고통, 편애, 부당함 등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부인 M씨는 결혼 이후에 자신의 남편에게도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고통들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치료자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부인 M씨는 어머니의 세뇌로 고통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참는 것만 배운 것이다. 어머니는 딸인 M부인에게 스스로 고통을 이야기를 하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고 말을 했을 때 그녀를 처벌하고 그녀의 말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을 했기 때문에 부인 M씨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머니의 말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부인 M씨의 어머니는 친어머니이다라는 점이다. 자신의 배속에서 낳은 친 어머니로부터 이러한 일종의 학대와 버림을 받은 부인 M씨는 이세상에 엄마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라고 생각을 해서 어느 누구와도 신뢰를 개발하고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하는 능력을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그 결과는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이라는 병을 낳게 된 것이었다.

 치료의 과정에서 부인 M씨는 계부는 친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에게 편애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더욱 더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친 어머니가 그녀에게 그렇게 그녀를 학대라고 마치 동물을 사욕하듯이 그녀를 이용하고 그녀를 학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실토를 했다. 차라리 친 어머니가 아니고 계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늘 혼자서 생각을 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아가 말을 하고 표현을 할 수 있는 자아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성장이 중지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부인 M씨의 표현 능력과 의사 소통 능력은 초등학교 4학년의 시점에서 보통의 어린이들의 나이에서 보이는 자아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시쯤에서는 부모님의 이 세상에서 최고이고 부모님이 이상적인 인물로 보이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는 시절이 아닌가?

 이 시점을 넘어가면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의 시점으로 올라가면서 자녀들은 이성이 발달하면서 친구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친구들의 부모님과 자신의 부모님들을 비교를 하게 되면서 부모님을 비판하고 평가를 할 수 있는 자아의 이성적인 면이 발달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고 부모님의 모순점들을 지적을 할 수 있게 되는 나이인 사춘기 나이로 접어들게 되면서 부모님에게는 이유 없는 반항””질풍 노도의 시기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부인 M씨는 이 사춘기의 진입에서 좌절이 된 것이 아닌가? 사춘기의 자아를 통과하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대한 실망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내면의 세계로 퇴행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분석 4: 친구들을 한 사람도 사귀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전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재혼 가족들과 합류를 한 이후에 초기에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그 친구가 M부인의 대문 앞에서 문패를 보고 아버지의 성()씨와 M부인은 성()씨가 다른 것을 보고 나서 얼굴의 표정이 이상해지면서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나서 놀래서 그 친구를 쳐다 보았을 때 그 친구는 당황해 하면서 도망을 가 버렸다.

 그 사건 이후에 부인 M씨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멀리하고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인 M씨는 친구들이 부인 M씨의 성()씨와 아버지의 성()씨가 다른 것을 보고 싫어하고 기피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비밀로 하고 그 비밀이 탄로나게 되면 모든 친구들이 M부인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친구들을 사귀기 않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부인 M씨가 사실은 아버지와 그녀의 성()씨가 다른 것을 열등감으로 이미 그녀의 내면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재혼한 가정에서 문패는 이미 친구가 방문을 오기 전에 오래 전에 있었다) 4학년 말기에 집에 같이 온 그 친구가 문패를 보면서 M부인의 얼굴 표정이 불편함이 느껴지고 껄끄러워짐을 느끼면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는 얼굴 표정을 보고 피드백이 되어서 그 친구가 부인 M에게 왜 아버지와 네가 서로 성()씨가 다르냐?”라고 물어 보지 못하고 놀래서 도망을 간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즉 이미 부인 M씨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내면 속에 열등감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친구가 그것을 알게 된 그 순간에 비밀스럽게 감추어온 그녀의 비밀이 탄로 나는 바람에 M부인의 얼굴 표정에서 그것을 금기 시 하는 표정어로 그 친구에게 피드백으로 전달이 되면서 그 친구는 그것을 물어 보지 못하고 도망을 간 것이다. 즉 그 친구에게 표정어로써 내 열등감이니 건들이지 말라는 경고 신호가 부인 M자신도 모르게 피드백이 된 것을 스스로 모르고 그 친구가 부인 M씨의 가족의 비밀을 알고 놀래서 도망을 가는 것은 보고 나서 친구들이 부인 M씨의 가족 비밀을 알고 나서 그녀를 거부하고 피하고 멀리하고 있다는 것으로 확신을 하게 되면서 부인 M씨는 친구가 필요 없다고 친구관계를 영원히 끊어버린 것이었다.

즉 부인 M씨는 그 사건 이후부터 친구를 사귀면 아버지의 성()씨와 부인 M의 성()씨가 다른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친구들이 부인 M씨를 떠나갈 것이라고 잘못 판단을 한 것이 친구들을 사귀고 그녀의 비밀을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근본 원인이 아닌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분석 5: 정신분열증의 발발을 분석해 보자. M부인은 초등학교 4학년의 11살의 나이에서 어머니로부터 받은 학대, 편애와 부당한 대우에 한이 맺히면서도 그것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분노, 짜증, 미움, 적대 감정은 내면 속에서 쌓여져 갔다.

이것이 40대 후반에 IMF의 발발로 남편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두 명의 대학생의 자녀들의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대출을 받아서 8개의 통장으로 돌려 막기를 하다가 결국은 자아가 감당을 하지 못하고 붕괴된 것이 정신분열증으로 터진 것이었다.

M부인의 내면의 세계 속에서는 어머니, 계부에 대한 노여움, 미움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그러나 터지지는 않았다. 이후에 IMF의 발발로 돈을 빌려서 대부를 받았다가 이것을 갚지 못하고 돌려 막기를 하면서 막을 길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끙끙대면서 남편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1달 가량 밤에 고민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남편이 이야기를 했다(남편이 3개월의 시쯤에서 한번 컨설팅을 했음).

고로 한달 동안의 대출한 돈의 돌려 막기에 실패해서 이 상처가 휴화산으로 잠을 자고 있는 억압된 분노의 불덩어리에 도화선이 되어서 잠자고 있는 분노의 화산에 촉진제가 되어 정신분열증으로 폭발을 한 것이었다.

부인 M씨의 두 번째 정신분열증의 폭발은 제대로 분석이 되어지지 않아서 분석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 번째 정신분열증의 재발은 그녀와의 대화의 과정에서 충분히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분석 6: 정신분열증의 3번째 재발을 분석해 보자. 부인 M씨는 남편의 신부전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아들의 신장 이식을 결정을 했을 때 친정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친정 어머니는 사위가 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 비용을 제공해 줄 터이니 투석을 받도록 종용했다. 그러나 아들의 신장 이식 결정으로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아들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서에도 불구하고 친정 어머니는 죽으면 혼자 죽지 왜 아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느냐?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그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인 M씨는 이번에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행을 했다.

 실행 이후에 친정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명령을 해서 부인 M씨와 관계들을 모드 끊어버리고 퇴원 후에 친정 식구들의 병 문안을 막아버려서 부인 M씨가 분노해서 세 번째 정신분열증이 재발하게 된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즉 어머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에 대한 대가로 친정 식구들과 관계를 끊어버린 것에 대한 부인 M씨의 노여움이 세 번째 정신분열증의 촉진제가 된 것이었다.

 친정 어머니의 강압과 복종의 강요는 엄청나서 부인 M씨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모두 어머니의 말에 복종적이고 의존적이 되어서 자치심이 없는 자녀들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여동생을 제외하면 둘 째 남동생은 대부 업으로 막대한 돈을 모았지만 40이 되어서도 독신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세 번째 여동생은 결혼 후에 남편의 실직으로 친정 어머니에게 의존해 있고 그리고 막내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서 여러 개의 대학으로 전전하다가 결국 졸업을 하지 못했고 그리고 결혼 이후에 무능력으로 어머니가 학원을 차려주는 바람에 부인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부인 M씨의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그녀의 말을 반대하지 못하게 하고 처벌적이고 강압적인지 알 수 있었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환청과 환각들을 분석을 해서 그 뿌리를 찾아내는 치료의 과정을 거친다. 왜냐하면 환청과 환각은 어린 시절에 받은 심리적인 상처의 실마리가 되기 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꿈의 분석처럼 그것을 서로 퍼즐을 맞추듯이 연결해서 맞추어서 분석으로 찾아내어 그것을 환자가 알게 만들어주게 되면 환청과 환각이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청 분석 1: M부인이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 있을 때 혼자서 노래 소리가 강박증으로 귀에 들리는 환청이 있었다고 했다. 그 환청을 분석을 해 본 결과 그 환청의 노래 소리는 그녀가 펜팔로 육군 소위와 사귀고 있을 때 어느 날 그 연인이 휴가를 나왔을 때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을 때 그 영화의 주제곡이라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환청 분석 2: 부인 M씨가 정신병원의 병동에 입원을 했을 때 어머니와 계부가 병문안을 왔었다. 그 때 부인 M씨는 계부를 입원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고함을 쳐서 쫓아 내었다. “계부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라는 환청이 들리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계부가 나를 죽이려고 하니 계부를 내 병실에 들리지 말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것은 초등학교 4학년 이후에 계부가 자신의 자녀들과 부인 M씨를 차별 대우를 한 것이 부인 M씨의 내면 속에 쌓이게 되면서 의식 속에서 자아가 표현을 하지 못하게 되자 정신이 돌아버린 상태에서 계부의 편애에 대한 분노의 자아가 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서 설날과 추석 때는 부인 M씨는 두 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계부에게 선물을 빠뜨리지 않고 챙기고 친정 집을 방문을 하면 계부는 부인 M씨의 자녀 2명에게는 용돈을 한번도 주지 않았지만 여동생의 자녀들이 즉 친손자, 손녀들이 왔을 때는 용돈을 주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환청 분석 3: 부인 M씨는 환청에서 어머니 -----계모 ---죽인다라는 이상한 환청들이 들였다고 했다. 이것은 분석이 어렵지 않았다. 즉 친 어머니가 친모가 아니고 계모처럼 그녀를 학대하고 짐승처럼 부려먹었다, 어떻게 친모가 나에게 그렇게 자신을 편애하고 학대할 수 있는가? 나는 사육당 한 것이다라는 그녀의 표현에서 충분히 실마리를 연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인 M씨의 의식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어머니가 친모가 아닌 계모처럼 자신을 학대하고 편애하고 차별 대우로 부러먹고 이용했다는 것을 똑똑하게 내면에 묻힌 자아가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환각 분석 1: M 부인이 환각 증세로 “xxx야 칼, 칼을 들고 ---칼칼 –“라는 칼을 든 환상 때문에 비명을 질렀던 것을 회상을 했다. 이러한 환각 증세는 7년 동안 농장을 일구고 젖소들을 먹이어서 살아가고 있을 때 어머니가 농장이 팔리게 되었으니 비워 달라고 했을 때 분노해서 처음으로 계약서를 보여주세요라고 했다가 어머니가 노발대발해서 네가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네가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너를 먼저 죽이겠다라고 해서 부엌에서 칼을 들고 뛰어나오는 것을 M부인이 보고 놀래서 그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4살 된 딸 아이가 위험해서 딸에게 칼이 위험하니 빨리 피하라라는 말에서 앞과 뒤가 거두 절미해서 조합이 된 말이라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이후에 치료의 과정에서 이런 환각과 환청들이 분석으로 밝혀지고 나서 그 때 4살 이었던 딸이 결혼으로 2명의 자녀들을 출산해서 살고 있는 딸과 만났을 때 그녀가 4살 때 어머니와 할머니의 갈등에서 할머니가 부엌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는 상처 장면을 기억을 하는지?를 물었을 때 이제 어른이 된 그 딸은 그 장면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까?”라고 확실하게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부인 M씨는 그 때 칼칼, xxx ! –할머니 ---칼칼이라고 했던 말은 바로 4살 때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을 한다는 것이 말이 조합이 되지 않아서(사실은 부인 M씨의 언어 표현 능력의 발달 중지 탓) 말을 표현을 하지 못한 것임을 딸에게 설명을 할 수가 있었다.

환각 분석 2: M부인이 육군 소위가 내 때문에 죽었다라고 소리를 치면서 환각으로 M부인을 쫓아오는 장면을 분석해 본 결과 펜팔로써 사귀던 연인인 육군 소위가 M 부인의 부모님 때문에 실망에서 오는 죄의식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실제로 그 소위가 실제로 죽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육군 소위를 심리적으로 죽음으로 내 몬 것이 부모님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육군 소위는 그 이후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그 원인은 부모님의 거부와 부인 M씨의 소극적인 태도로 상처를 받은 것이 부인 M씨 자신 때문이었다는 죄의식 때문에 생긴 것임을 인정을 했다.

분석 7: 왜 하필 40대 중반에 정신분열증이 발발을 했는가? 정신분열증은 사춘기 질병으로 사춘기에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신분열증은 고대나 중세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 1848년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생긴 산업 사회의 부산물이 정신분열증으로 보고 있다. 정신분열증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레펠린(Kraepelin)에 의해서 학계에 최초로 보고 되었다. 그는 이 병을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로 명명을 했다. 젊은 사람들이 치매에 걸린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911년에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을 연구한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에 의해서 젊은 이들의 치매가 아니고 정신분열증(schizophrenia)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schizo 라는 말은 쪼개지다, 분열이라는 말이고 phren 라는 말은 정신, 마음이라는 말로써 그리고 i라는 말은 병이라는 말로써 정신이 분열된 병 즉 정신분열증이라는 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Ellenberg, 1970).

정신분열증은 주로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인 13 살에서 27세 사이에 주로 발병이 잦다는 연구들을 결과로 사춘기 질병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는데 부인 M씨의 경우에는 40대 후반에 정신분열증이 발병을 한 것으로 볼 때 부인 M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11살 때까지는 외할머니 밑에서 건강하게 자라났기 때문에 11살 때까지의 자아가 부인 M씨의 자아를 건강하게 떠 받쳐 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11살 이후부터 부인 M씨는 친정 어머니의 학대와 편애 그리고 계부의 차별 대우 등으로 분노, 미움, , 짜증이 누적되어져서 우울증으로 연결된 것이 몇 가지 촉진 요인들로 도화선이 되어서 폭발한 정신분열증이 틀림이 없었다.

위와 같은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치료의 과정이 따라오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분석과 치료의 과정이 분리되어 진행되어지지 않는다. 분석 이후에 즉각적인 치료의 과정이 따라오게 되는데 치료자가 장애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분리시켜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 치료의 핵심과정은 성장이 멈추어버린 자아를 초등학교 4학년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성장을 시키는 것이다. 이 자아의 성장에는 반드시 감정의 방출(카타르시스적인 면)과 의사 소통과 증세들의 원인의 이해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친구들과 관계를 다시 시도를 하는 과정들이 함께 동반을 하게 된다.

 자아의 표현 1: 어머니에게 그 시점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행동으로 표현을 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하는 과정으로 치료실 안에서 재연을 시킨다.

어머니! 왜 나를 11살 때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의 재혼 가정으로 불러 들였나요? 억울합니다. 내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을 때에는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많았고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어머니가 이혼하고 재혼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외할머니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술을 마시면 외할머니를 돌보아드리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외할머니가 나를 돌보아 주면서 오순도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의 호출로 내가 어머니의 재혼 가정에 합류하게 되면서 나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아의 표현 2: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배속에서 나온 친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모질게 할 수 있었습니까? 나는 어머니의 딸이 아닙니까? 나를 짐승처럼 부려먹기 위해서 나를 어머니의 집으로 초대를 했습니까? 초대를 한 것이 아니고 나를 부려먹었지 않았습니까? 나는 부엌 일들을 그리고 동생들을 양육을 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해야 했습니다.나는 늘 동생들을 내가 전적으로 양육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실제 엄마는 어머니가 아니고 내가 그들의 엄마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11살 때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를 불러 들렸나요? 내가 일을 하고 밥을 짖고 빨래를 하고 동생들을 보살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나를 부려 먹기 위해서 나를 불러 들이지 않았습니까? 내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를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아의 표현 3: 어머니! 나는 4학년 때 통신표에서 내 성()과 보호자의 성()씨가 다른 것을 알고 나서 부끄러웠습니다. 그 때 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문패를 보고 나서 도망을 하는 것을 보고 내 치부가 들통이 나서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을 보고 나를 거부하는 것으로 오인해서 나는 그 이후에 친구들을 사귈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자아의 표현 4: 나는 어머니가 그러한 것을 다 알아서 해결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늘 입버릇처럼 내가 알아서 모든 것을 다 해 줄 터이니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너는 행운아다! 내가 없으면 너는 고아원에 갔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나를 어머니의 말에 복종하고 부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를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나는 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남편 후보자와 맞선을 보았을 때 학력과 가정 환경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알아서 모든 것을 다 체크를 해 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 나는 사기를 당한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사위의 학력을 알아보지 않고 중매인(나중에 보니 남편의 친 누나)의 말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친딸을 결혼을 시킬 때는 나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위에게 대학 등록금을 다 대주고 그리고 결혼 시에 아파트까지 사주려고 나를 7년 동안의 일해서 일구어 목장으로 만든 그 농장에서 하루 아침에 내 쫓았습니다.

자아의 표현 5: 어머니! 어머니는 나를 보고 너는 내 혹이다””네가 없었다면 내가 더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갔을 것이다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을 했습니다. 내가 왜 어머니의 혹입니까? 첫 번째 결혼에서 그 남편을 선택한 것도 어머니 자신이고 그 남편이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도 어머니의 책임이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나는 어머니의 잘못된 결혼의 희생자가 아닙니까? 나는 억울합니다. 왜 내가 어머니의 결혼의 실패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까?

위와 같은 치료의 과정에서 부인 M씨는 울고 또 울고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친 어머니에게 당한 배신감과 어머니가 사랑이라고 위장을 해서 그녀를 속이고 이용하고 부려먹는데 급급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미움과 증오심에서 복수심에게 50년을 살아온 그녀 자신을 한탄했다. 몇 개월간의 울음으로 통곡을 하면서 자신의 자아의 표현 훈련을 했다.

 부인 M씨는 치료자를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그러한 부인 자신의 억울하고 부당하고 한 맺힌 이야기들을 남편에게 조차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부인 M씨는 결혼 직후부터 남편이 그녀를 속이고 그러한 말들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남편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세월이 30년을 남편과 같이 살면서 그녀의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일체의 고통과 고민과 갈등들을 내면의 속에 깊숙이 묻어버리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것이 정신분열증으로 자아가 붕괴된 원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친정 어머니에게 대한 분노와 억울함의 표현은 끝없이 이어지고 분노의 감정과 미움과 증오심이 폭포수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터져 나오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부인 M씨는 불면증은 사라졌고 약물을 중단하게 되었고 환청과 환각이 분석되어지면서 환청과 환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 증오심은 끝없이 터져 나왔다.

자아의 표현 6: 어머니! 어머니가 산 자락에 산 황무지에 우리 내외를 들어가라고 종용을 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였습니다. 그곳에 우리 내외를 들어가게 했을 때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너희들은 관리 감독을 하고 인부들을 제공해줄 터이니 그 땅을 일구게 했습니다. 달랑 어린 송아지 젖소 2마리가 전부였고 그리고 남편이 돈을 빌려서 송아지 젖소 2마리를 보태서 4마리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인부들을 제공해주지 않았고 남편이 그 황무지를 개간을 해서 옥토를 만들어 나가면서 그리고 우리는 젖소의 젖을 짜서 팔아서 생계비로 사용했습니다. 그야 말로 우리는 한 푼의 일한 대가의 비용도 받지 못했고 어머니는 그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젖소들이 잘 자라서 어미 소가 되자 말자 우리에게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한 마리씩 가져가서 팔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계부의 큰 딸인 장녀의 남자 친구 학비와 생활 비용으로 지불한 것을 알았습니다. 분기탱천 했지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아의 표현 7: 어머니!는 나에게 그 농장을 일구게 되면 서로 50 50 으로 하자고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어머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7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농장은 옥토가 되었고 젖소들이 20마리가 넘어갔을 때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하루 아침에 나를 목장에서 돈 몇 푼을 손에 쥐어주면서 우리 가족을 내 쫓았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자아의 표현 8:  어머니가 나에게 계모였다면 차라지 나았을 것입니다. 계부가 나에게 차별하고 편애를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계부는 나에게 친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에게 친 어머니이면서도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대우를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믿었던 어머니로부터 사기 배신을 당했는데 내가 누구를 믿는단 말입니까? 우리 친 어머니가 나에게 사기꾼으로 배신자로 느껴지는데 내가 누구를 믿는단 말입니까? 그래서 나는 남편도 믿지 않고 친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아의 표현 9: 우리 가족을 하루 아침에 목장이 팔렸으니 나가 달라고 했을 때 너무나 억울해서 내가 계약서를 한번 봅시다라고 말을 했다고 저 년이 나를 죽이라고 하니 내가 너를 먼저 죽이겠다라고 하면서 부엌 칼로 달려들지 않았습니까? 나는 평소에 이 농장을 팔면 서로 50 50으로 나누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는데 결국은 나를 이용하고 속이고 사기를 친 것이 억울해서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아의 표현 10: 내가 그 때 40대 후반으로 나는 평생 동안 어머니게 한번도 말 대꾸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을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평소에 어머니의 말씀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용을 당했고 배신을 당했고 친 어머니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자아의 표현 11: 어머니와 계부가 동생들에게 하는 행동과 말들이 나와는 전혀 180도 다른 것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 증오심이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는 연애를 하면 안 된다, 어머니가 알아서 시집을 보내줄 것이니 절대로 연애를 하면 안 된다 라고 해서 나는 그 육군 소위를 사랑하면서도 그냥 떠나 보냈습니다. 그러한 큰 여동생은 대학에 보내주었고 연애를 했을 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직장 생활에서 저녁 7시 이후에 들어오면 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은 저녁 11 12가 되어서 귀가를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남자 친구의 학비와 생활비용까지 대 주었습니다. 우리를 내 쫓고 농장을 팔아서 사위의 아파트를 사주지 않았습니까?

자아의 표현 12: 내 아들이 신장을 떼어 내서 아버지의 신부전증을 고치겠다고 해서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아들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소견서를 보여주었지만 어머니는 사위를 차라지 죽으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신장을 떼어내서 아들의 건강이 위험해진다는 핑계로 남편에게 죽어라 라고 강압을 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딸인 나는 어떻게 되는지? 를 생각해보지 않았습니까?

내가 어머니의 충고를 거부하고 아들의 수술과 남편의 수술을 진행을 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보복으로 수술 이후에 퇴원을 한 후에 친정 가족구성들을 단절시키고 방문을 오지 못하게 막아버렸습니다.  내 분노가 하늘을 찌르면서 세 번째 정신분열증이 폭발했습니다.

자아의 표현 13: 내가 정신분열증으로 10년 동안 정신병원에 드나들면서 재발 과 세 번째 재발을 겪으면서 내가 이렇게 평생 동안 고통에 시달리는 것의 밑바닥에는 어머니의 부당한 대우와 편애에 대한 분노, 미움, 증오심과 적대 감정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인 M씨는 이러한 표현을 하고 소통을 하게 되면서 부인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동갑내기 부인에게 이와 같은 억울함을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부인과 친하게 되면서 그녀와 같이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몇몇 친구들을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사귀게 되었다.

위층에 살고 있는 그 부인은 부인 M씨의 억울한 한 맺힌 이야기를 듣고 당장 어머니를 찾아가서 그러한 억울한 고통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자고 졸랐지만 M부인은 거부를 했다. 아직도 어머니 앞에서 이러한 억울함을 표현할 만큼의 자아가 자라지 않았다고 자신감이 없어했다.

 위와 같은 치료의 과정에서 어느 듯 48시간의 치료 시간이 끝나게 되었고 치료자는 아직도 자아가 충분하게 성숙하지 못했으니 치료를 더 계속해서 받아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적어도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억울하고 한 맺힌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을 했지만 부인 M씨는 이제는 환각과 환청들이 사라졌고 약물을 복용하지 않아도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 속의 이야기들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몇 명이 생겼으니 이제는 안심이 된다고 생각해서 치료를 종결하기로 했다.

 부인 M씨가 10년 동안 정신분열증의 재발과 세 번째 재발을 거치면서 쉽게 정신분열증에서 빠져 나온 것은 부인 M씨가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부인 M씨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까지는 외할머니와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고 표현을 할 수 있는 자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감정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M부인은 남편도 아들의 신장 이식으로 건강해져서 다시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아들도 신장 이식 수술 이후에 건강해지고 그리고 부인 M씨 자신도 정신분열증에서 빠져 나와서 건강해지면서 온 가족이 처음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도 치료 종결을 당길 수 있는 환경으로 작용을 했다.

 그 이후에 1년 이후에 아들과 부인 M씨의 추천으로 남편이 6개월 48시간의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고 남편이 6개월의 치료 이후에 몇 개월 뒤에 결혼한 딸(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리는 두 명의 자녀가 있음)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지원을 해 주어서 치료자에게 온 가족이 개인별로 모두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은 최초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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