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모습  

 

 과거는 살아 있다 8

 

 과거는 살아 있다 Ⅷ 부에서는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정신분열증이 된 한 부인의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의 상처가 자아(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내면 심층의 심리분석을 통해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치료자는 약 4년 전에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2년 전에 선생님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xxx를 기억하십니까?”라는 전화를 받고 치료자의 마음 속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던 그 젊은이가 떠올라서!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선생님에게 저의 어머니를 부탁하려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10년 동안 고통을 받고 있는데 최근에는 불면증으로 밤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합니다. 약물을 복용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치료자는 어머니가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원하시면 모시고 오세요, 제가 치료를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2년 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았던 xxx 씨는 불안장애 6개월 동안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을 때 그의 가족 이야기에서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치료자의 머리 속의 기억으로 회상이 되었다.

 약속한 시간에 부인 M씨가 도착을 했다. 곧 바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1 2시간으로 분석 치료를 시작을 했다. 그러나 2주일 이후에 2시간의 분석 치료에서 1시간을 더 늘여서 1회기 당 3시간의 분석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내면 속에 억압된 감정들 특별히 분노, , 짜증, 적대 감정을 입 밖으로 토해 내도록 하기 위함에서 였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약물을 사용해서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통해서 치료를 한다. 이것을 대화 치료(talking cure)라고 부른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100 년에 고안을 한 치료 기법으로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를 하는 것은 대화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관계를 하고 있지 않는가? 대화를 통해서 의사 소통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갈등을 해결하는 일상의 모든 활동들이 바로 말을 하는 것 즉 의사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가?

 옛날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은 말로써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말로써 대화를 하는 과정을 심리치료에서는 의사소통이라고 부른다. 의사 소통의 능력을 분석하고 소통 결함들을 찾아내서 치료를 하는 것이 심리치료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를 하게 되면 대화 치료의 중요성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눈빛 혹은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보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서 판단하는 세칭 무속인 혹은 점을 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심리 과학과 정신의학으로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분석을 해서 그 사람의 마음 속의 상처들과 욕구들 그리고 소망들, 갈등들을 알고 그리고 이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미치는 영향들을 분석해서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화 치료의 핵심이다.

 최근에 컴퓨터와 휴대폰의 등장으로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리고 어머니의 맞벌이로 양육의 과정에서 자녀들과 대화를 시간이 줄어들면서 의사 소통에 결함으로 대화를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서 각종 정신적인 문제들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이번 사례를 통해서 알리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대화와 소통이 어른이 된 시점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제 치료의 사례를 통해서 입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치료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M 부인의 현재의 문제점: 부인 M씨는 58세로 10년부터 환청과 환각 증세로 인한 정신분열증으로 3번이나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한 경험이 있고 지금은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대도 불구하고 불면증으로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가족 구성원으로는 60세의 남편과 2년 전에 치료자 한데서 불안 장애로 치료를 받은 아들 내외(3살 된 아들이 있음) 그리고 결혼한 딸(오빠 보다 먼저 결혼으로 2명의 자녀) 내외가 있다고 했다. 부인 M씨는 결혼 전에는 2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경험이 있지만 결혼 후에는 전업 주부로 생활에 왔다고 했다.

 M 부인의 삶의 역사: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어린 시절의 발달의 역사를 스크린을 하는 것이 치료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히고 있다. 유아기 시절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상호관계를 그리고 유치원 시절과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초등학교 중학년, 초등학교 고학년 그리고 사춘기 기간 그리고 성인기 등으로 각 발달 단계를 거칠 때 통과해야 할 과업들을 체크를 해서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혹은 통과하지 못한 자아 결함이 있는지?를 스크린 해서 발달 단계에서 생긴 문제들과 자아 결함들을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치료자가 잘 알고 있었다.

 부인 M씨는 4살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되자 어머니가 재혼을 위해서 딸인 M씨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재혼을 하면서 11살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이후에 분석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부인 M씨가 11살 때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절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술회를 했다.

외할머니는 술만 드시면 통곡하고 우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결혼 후에 3명의 자녀들을 낳았으나 2명은 어린 시절에 병으로 사망하고 지금의 M부인의 어머니를 데리고 재혼을 해서 새 남편을 만났는데 이후에 외할머니는 병으로 사망한 두 아들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들어서 늘 울고 우울해하는 것을 보다 못한 남편인 외할아버지가 술을 마시라고 권유를 해서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술만 마시면 죽은 2명의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통곡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통곡을 하는 외할머니를 달래면서 돌보아주는 일이 M부인이 11살 때까지의 유일한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11살 때 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이 잘 지냈다고 했다.

어머니와 합류: M부인의 어머니는 M 부인이 11살이 된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재혼한 가족들에 합류하라고 해서 어머니의 재혼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재혼으로 4명의 자녀를 출산을 했고 M 부인이 어머니의 가족들과 합류를 했을 때 7살 아래의 큰 여동생이 4살이었고 2살 된 남동생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이후에 또 한 명의 남동생이 태어나서 4명의 동생들을 돌보아주고 어머니가 하고 있는 부동산 사업에 심부름과 부엌일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했다, 양부인(계부) 아버지는 소득이 별로 없는 비어 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생계비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회고를 했다. 고로 어머니가 부동산 사업으로 일을 해서 생활을 꾸려 나갔다고 했다. 어머니는 생활 능력이 강한 사람으로 가족들을 좌지우지 했고 계부는 실권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M 부인은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나이로써 어머니 대신에 부엌에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그리고 빨래를 하는 집안 살림을 맞아서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부동산 사업으로 일을 해서 가정을 꾸려나가야 했기 때문에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할 시간이 없었고 여기에 더 붙여서 어머니가 돈을 빌리고 제 때에 갚지 않아서 빚쟁이들이 들어 닥치는 경우에는 어머니는 잠적해 버리고 M 부인이 그들을 직면을 해야 하는 어려움들이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어머니의 재혼 가정에 합류를 하면서 한가지씩 어려움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그것이 심리적인 상처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M 부인은 7살 아래인 4살 여동생과 갈등이나 말다툼이나 싸움이 나면 한번도 그 여동생에게 이겨본 적이 없다고 회고를 했다. 언제나 여동생이 큰 소리를 치고 친 언니로써 대우를 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계부인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인 M 부인에게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한번도 친 딸처럼 대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언제나 M 부인은 계부인 아버지의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을 했고 아버지 옆에 가는 것 만으로도 불편하고 껄끄러웠다고 털어 놓았다.

 상처 이벤트 1: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한 여자 친구가 M 부인의 집에 놀러 오게 되었는데 대문 입구에 붙어있는 아버지의 문패를 보고 M 부인과 성()씨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래는 것을 보게 되었다. M 부인의 성()과 계부인 아버지의 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친구는 M부인에게 그것을 물어 보지 않고 친구인 M 부인의 얼굴 표정을 살피다가 그만 집으로 도주하듯이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그 친구와 관계가 단절되었고 M 부인은 아버지와 성씨가 다르다는 것의 동료들의 반응에 놀래서(친구들의 멸시, 조롱, 비웃음으로 머리 속에 각인) 그 이후에는 이것이 M 부인의 학교 시절에 가장 큰 상처이자 비밀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이후에도 통신표(학기 말에 학생들의 학업 성적들과 행동 상황들을 기록해서 부모님에게 보고하는 통지표)의 첫 면에는 보호자인 계부의 이름과 학생의 이름이 나란히 기재가 되는데 항상 아버지의 성과 학생의 성이 다르게 기재가 되어서 M부인을 괴롭혔다고 했다. 혹시 친구들이 그녀의 성과 아버지 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까봐 늘 통신표를 숨기려고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M부인은 한번도 어머니나 계부에게 호적에 자신의 이름의 성()씨를 계부의 성으로 고쳐달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별히 어머니가 딸인 M 부인의 마음 속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이것을 스스로 알아서 고쳐주기를 바랬지만 어머니는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역시 M 부인도 어머니에게 그러한 고통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 계부의 눈치만 살피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문제는 마음 속에서 사라졌다. 학교 생활의 종지부로 이름의 성()씨 문제는 사라졌지만 마음 속의 한 구석에는 나는 이 집의 가족 구성원이 아니다, 나는 이방인으로 이 집의 가족 구성원들과 어울릴 수 없고 소외된 외톨이가 된 느낌들은 결혼 전까지 남아 있었다고 눈물로 술회를 했다.

 M 부인은 공부를 비교적 잘해서 성적이 좋아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에 진학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그것을 눈치를 챈 계부가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라고 비아냥거리고 어머니 한데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여상(女商)에 진학을 해서 졸업 후에 취업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서운했던 것은 친모인 어머니가 한번도 딸인 M 부인에게 대학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여상(女商)을 졸업하고 나서 M 부인은 조그만 목재소에 취업을 해서 경리를 보는 회사원이 되었다고 했다. M부인은 마음 속으로 항상 취직을 해서 동생들의 학비를 지원해주겠다고 일찍부터 결심을 했었다고 했다. 월급을 타면 봉투 채로(과거에는 월급을 봉투에 넣어서 현금으로 지급) 계부에게 받쳤다. 봉급에서 한 푼도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계부께 드렸으나 계부는 한번도 M부인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고 서운해했다. 경리 사원이 되어 어른이 되었지만 화장이나 옷차림에 신경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고 했다. 한 푼이라고 어머니에게 그리고 계부에서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점심값과 화장품 값이 필요한대도 계부는 한 푼도 용돈으로 되돌려 주지 않았다. 이것을 본 어머니가 계부를 욕을 하면서 어머니가 M 부인에게 점심값과 교통비 등을 지원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M 부인은 그것에 대해서 불평을 해 본적이 없었다.

 M 부인은 회사 일이 끝나면 곧 장 집으로 달려와서 동생들을 돌보아야 하고 식사를 준비를 해야 했다. 늦게 들어오거나 직장에서 일이 많아서 늦어지면 계부는 노발대발 했다. “여자가 늦게 다니면 바람나기 쉽다라는 말들을 해서 M부인을 서운하게 했다.

 어머니는 항상 M 부인에게 너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네가 없었다면 나는 더 좋은 자리에 재혼을 했을 것이다,”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을 했다. “너는 어머니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가 너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너는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서 M 부인의 가슴에 멍들게 했지만 한 마디도 어머니에게 불평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은공으로 어머니의 보살핌에 늘 감사하게 생각을 해 왔었다고 했다.

상처 이벤트 2: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펜팔(편지 교환을 통해서 남녀의 사귐)를 하게 되어 어떤 군 장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1년 동안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수십 통의 편지로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한번은 그가 휴가를 나와서 부모님 몰래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면서 영화 관에서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서로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고 그 남자 친구인 육군 소위가 전역을 하게 되면서 M부인의 부모님을 찾아와서 1년 후에 M 부인과 결혼을 하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계부와 어머니는 단칼에 거부를 해서 두 사람은 결별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계부는 그 사건 이후에 M부인이 혹시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닌가? 늘 감시를 했다고 했다. 연애하면 칼 맞는다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고 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연애를 절대로 안 된다라고 엄포를 자주 놓았다고 했다.

이후에 M 부인이 경리 일을 하고 있는 목재소의 사장의 남동생이 M 부인을 보고 좋아하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부를 당했다고 했다. 육군 소위와 결별하고 나서는 연애를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남자들을 사귀려고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결혼 생활: 경리로 일을 한지 2년 만에 부랴부랴 어머니가 좋은 남편 감이 있으니 이제 곧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바람에 맞선(두 남녀가 한 자리에서 소개를 받는 만남)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장소는 M 부인의 집의 아래 방에서 두 사람을 같이 있도록 한 다음에 밖에서 문을 잠가버리는 바람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할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게 되었다고 했다.

M 부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남편도 당연히 고등학교를 나왔을 것이라고 맞선 자리에서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결혼 후에 알게 된 것은 남편은 초등학교를 겨우 나온 사람으로 친척이 운명하는 조그만 선박 회사에서 경리를 보고 있는 사람으로 계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M부인은 어머니가 항상 너는 내가 알아서 좋은 신랑감으로 시집을 보내줄 터이니 연애는 하지 말고 정숙하게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라고 늘 들어왔기 때문에 어머니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학력, 경제력, 외모, 인품 등을 충분히 알아보고 결혼을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에서 남편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 점점 분노가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시가댁 식구들과 갈등: 시어머니는 남편의 계모로써 6명의 동생들의 뒤 바라지를 M 부인에게 강요를 했다. 이제 결혼을 시켜 주었으니 가장으로써 본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강압을 했다. 3살 위인 누나와 함께 남편은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갖은 고생을 한 사람으로 아버지가 시골에 있는 논 몇 데기(몇 개의 논과 밭)를 계모가 차지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조상의 몫으로 조그만 밭을 M부인의 남편에 넘겨주면서 제사를 부탁한 것이 나중에 이것을 팔아서 농사 일에 투자를 한 것을 계모가 알게 되면서 집안 싸움으로 번져서 계모의 가족들이 제사 날에 M부인 집에 와서 제사 상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시댁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남편의 친 누나가 이웃 동네에 살고 있어서 자신의 남동생인 남편을 중매인에게 소개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으로 거짓말을 해서 어머니에게 M부인을 소개를 했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되면서 시누이가 된 남편의 누나를 미워하고 사기꾼으로 관계를 단절한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결혼 이후에 남편은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할 수 없이 어머니가 부동산으로 먼 시골에 산 자락을 사 놓은 곳에 가서 목축을 하기로 했다. 그 때 아버지로부터 물러 받은 조그만 밭을 팔아서 젓소 한 두 마리 사고 그리고 어머니가 사준 2 마리의 젓 소로써 목축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농장에서 밭을 일구기 시작을 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 일구기를 하면서 틈틈이 젖 소를 먹이고 돌보기 시작하면서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M 씨의 어머니는 남편과 M 부인에게 인부를 고용하게 도와줄 것이니 너희들을 감독을 하면 되다고 약속을 해 놓고 한번도 인부를 지원해주지 않았고 남편과 M 부인이 젓 소들을 사육을 해서 젖 소들이 10 마리로 늘어나게 되자 어머니는 그 젓 소들을 M 부인의 허락이 없이 마음대로 팔아서 M 부인의 이복 여동생의 대학 등록금으로 사용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어머니에게 분노했다.

M 부인의 어머니는 목장 일을 하고 있는 M씨 부부에게 이 목장을 일구면 절반은 너희들의 몫으로 반반으로 나누자라고 늘 입버릇으로 이야기를 해 왔다고 했다. 물론 M씨 부부는 목장에서 일을 하면서 노임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젖소의 우유를 판 돈으로 생활 비용으로 사용을 했다고 했다. 자녀들이 태어나고 아들과 딸들이 목장에서 자라나면서 어머니, 아버지의 일들을 옆에서 도와주면서 그런대로 먹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상처 이벤트 3: 목장 일을 하면서 세월이 7년 정도가 흘러갔고 남편이 스스로 땅을 일구어서 제법 밭으로 만든 땅이 늘어나면서 남편은 젖소와 농장 일구기에 열중해서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가 난데 없이 들어 닥쳐서 농장을 팔게 되었으니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하면서 M부인의 손에 단돈 4천만 원을 달랑 지워주면서 농장을 당장 비우라고 하는 최후의 통첩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M 부인은 날 벼락을 맞은 기분으로 깜짝 놀랬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1달 전에 왜 이사를 가야 하는지를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관례인데 아무런 사전 통고도 없이 다짜고짜로 농장에서 하루 아침에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M부인이 분기 탱천했다.

7년 동안 농장을 일구면서 노임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논으로 일군 땅을 하루 아침에 농장이 팔렸으니 비워주어야 한다는 말에 M 부인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어떻게 이를 수가 있습니까? 이 농장은 일구게 되면 어머니가 50% 그리고 우리 부부가 50% 로 나누기로 서로 약속을 한 것이 아닙니까? 라는 생각으로 분기탱천해서(그러나 그러한 말은 M 부인의 생각이지 실제로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생후 처음으로 분노를 표시하면서 계약서를 보여주세요라고 항의를 했다. 매매 계약서를 보고 그 판매 대금의 절반을 나에게 주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항의의 표시였다.

그 말을 하는 순간에 M부인의 어머니는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서 이년이!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네가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너를 먼저 죽이겠다라고 하면서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 들고 M부인에게로 덤벼들었다. 이것을 본 남편이 장모님을 말리면서 칼을 뺏어 화를 면했다.

여기에다 기름을 부어버린 것은 계부가 M 씨 부부에게 계산이 잘 못 된 것 같으니 4천만 원의 돈이 너무 많이 건네졌다는 식으로 새로 계산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싸움이 크게 확대 되었다. 이 말을 들은 M 부인의 어머니가 자살을 하겠다고 하면서 뒤 동산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남편이 장모님의 뒤를 따라서 장모님을 붙들고 말려서 겨우 싸움이 진정이 되었다고 했다.

도시의 외각 지역으로 이사: M 씨 부부는 할 수 없이 농장에서 쫓겨나서 어머니로부터 받은 4천만 원으로 사글세 방을 구해서 가족들을 데리고 도시의 빈민촌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남편은 일자리를 구해서 백방으로 돌아다니다가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겨우 일자리를 구해서 생활의 안정을 얻게 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누적된 분노가 점점 M 부인의 마음 속에서 쌓여가고 있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M 부인은 친정 어머니가 M씨 부부가 7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농장을 팔아서 M씨 부부를 쫓아낸 것은 M씨 부인의 첫째 이복 여동생의 결혼으로 아파트를 사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분노가 하늘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고 회고를 했다.

M 부인이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계부가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 시집을 잘 가면 되지?”라고 말을 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복 여동생은 대학에 간 것은 물론이고 연애를 해서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 남자 친구가 홀어머니 한데서 자란 사람으로 집이 가난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여동생이 알게 되었고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해서 M 부인의 목장의 젖소를 어머니가 M부인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팔아서 남자 친구의 학비를 조달했다는 것과 그리고 그 남자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결혼을 하게 될 때 M 부인의 목장을 팔아서 이복 여동생의 아파트를 사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M 부인의 분노는 점점 한계점을 넘어가고 있었다.

IMF 의 발발: 국가 부도 위기의 IMF의 발발은 M부인의 가족에 치명타를 날렸다. 남편이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대학에 재학중인 아들과 딸의 학비 때문에 아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를 해서 돈의 지출을 줄이게 되었지만 생활 비용과 딸의 학비 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지면서 M 부인이 사채를 빌려 쓰면서 돌려 막기로 통장을 8개나 만들어서 그것을 사용하다가 결국은 막지 못하고 붕괴가 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M 부인은 남편에게 일체 경제적인 문제 즉 대출 이자와 원금을 돌려 막기 등에 대한 문제들과 고민들을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M 부인 혼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몇 개월을 끙끙 대다가 결국은 한계점에 내몰리게 되자 마지막 한달 동안에 고민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되면서 정신분열증으로 자아가 붕괴 되어버린 것이었다.

정신분열증의 등장: M 부인은 잠을 자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고 환청과 환각 증세를 보이기 시작을 했다. 혼자서 노래를 부르면서 중얼거리고 가족 구성원들을 알아 보지 못하고 환청으로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xx ! ---죽이려고—“등의 이상한 말들 하거나 혹은 “xx 가 죽었는데 내가 잘못한 내 탓이다라는 이상한 말들을 중얼거리고 혼자서 낄낄거리고 웃거나 울거나 를 반복을 했다.

 남편이 M 부인을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약물을 복용하고 입원을 시키면서 환청과 환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나 많이 완화가 되었지만 그러나 계속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을 때 친가 가족들과 외가 가족들의 병문안이 있었다.

 M 부인은 정신 이상 상태에서 M부인의 친정 가족 구성원들이 병원에 병문안의 왔을 때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는 갈등이 없었는데 계부가 M부인의 병실에 들어서자 말자 계부에게 달려들어서 몸으로 그녀의 병실에서 밀어냈다. “아버지는 --– 죽었어---, ---, 죽을 수도 있다---“”어머니는 ----계모 ---칼 칼! --“ 등의 이상한 헛소리들은 계부를 보면서 그리고 어머니를 보면서 악화 되었고 병원의 관리인들이 어머니와 계부를 떼어내어서 M 부인의 병실에서 접근하지 말도록 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큰 이복 여동생이 M 부인에게 화를 내면서 언니가 어떻게 엄마에게 그렇게 할 수 있나?”라고 노발대발했다는 것을 M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고 분석의 과정에서 M 부인이 치료자에게 기술을 했다. 겉으로 보면 정신 이상 상태였지만 M부인은 그녀의 그 당시의 행동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후의 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위에서 M부인이 정신 이상 상태에서 말의 앞과 뒤가 맞지 않고 횡설수설한 말들이 조각들을 편집으로 연결시키게 되면서 그 이상한 지껄임 들이 스스로 편집으로 지어낸 소설이 아니고 M 부인의 마음 속에 감추어진 상처들의 조각이었음이 이후에 다루어지게 될 치료의 과정에서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질 것이다.

이후에 퇴원 후에도 M 부인은 크게 나아지지 않게 되자 정신과 약물로써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느낀 남편이 M 부인을 데리고 절에 가서 스님들 그리고 교회의 안수 기도 등의 민간 요법에 매달리게 되었으나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고 술회를 했다.

M 부인은 그녀가 결혼 후에 약 30년 이상을 같이 살아온 남편을 결혼 시에 그녀를 속이고 결혼을 한 사기꾼으로 취급해서 마음 속에서 관계를 단절해 왔으나 부인 M씨가 10년 동안 정신분열증으로 투병을 하고 있을 동안에 지극 정성으로 그녀를 옆에서 간호하고 그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남편에게 감동이 되어서 결혼 후에 처음으로 남편을 받아들이고 남편에게 정성을 다하게 되었다고 토로 했다.

 M 부인의 남편의 붕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M 부인을 곁에서 지극 정성을 다해서 간호해 오던 남편이 신부전 증으로 쓰러지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신장이 혈액을 걸러주는데 결함으로 몇 개월마다 한번씩 혈액 투석을 해주어야 살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M 부인의 가족에게는 일종의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한번 혈액 투석을 하고 나면 계속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혈액 투석을 받을 수 없다는 남편의 완고함에서 부인 M은 절망을 느꼈다,

죽어가는 남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신장을 이식하는 것인데 서로 신체적 조건이 맞아서 이식에 거부 반응이 없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찾는다고 해도 신장을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M 부인의 가정 사정으로는 신장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토로 했다.

 남편은 점점 신체적인 건강 조건이 악화 되어 에너지 고갈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M 부인의 결혼한 아들이 신문에서 어떤 젊은 공무원이 자신의 신장을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사람에게 기증을 했다는 선행을 읽고 자신의 신장을 아버지에게 제공하기로 결심을 하고 병원의 의사 선생님에게 자신의 신장을 아버지에게 이식 가능하지? 신체 종합 검사를 의뢰한 결과 아들의 신장이 M 부인의 남편에게 이식을 해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최종 통고를 받게 되었다.

외할머니의 선전 포고: M씨 가족 구성원들은 아들의 신장 이식에 모두 찬성을 했지만 M 부인의 어머니인 외할머니가 극구 반대를 했다. 외할머니는 사위에게 혈액 투석의 비용 일체를 제공해줄 터이니 아들의 신장 이식을 받지 말라고 극구 반대 했다. M씨의 어머니인 외할머니는 사위의 신장 결함으로 아들인 손자가 아버지에게 신장을 한쪽을 떼어내어 주게 되어 혹시 잘못되면 외할머니의 손자(M씨의 아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사위의 신장 이식을 극구 반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M씨는 어머니가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아들을 불구자로 만들어서 아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대경실색을 했다. 병원의 수술 담당 의사 선생님은 아들의 한쪽 신장을 떼어내어 아버지에게 이식을 한다고 해도 아들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친정 어머니는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친정 어머니의 보복: M 부인은 50평생의 삶에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강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M 부인의 어머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신장 이식을 실행에 옮겼다. 수술 후에 남편은 재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한쪽 신장을 떼어낸 아들의 건강도 재 빨리 회복이 되어 온 가족이 모처럼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M 부인의 어머니인 외할머니가 자신의 자녀들인 M 부인의 이복 동생들에게 관계 단절을 하도록 압력을 넣어서 M 부인의 친정 식구들이 M 부인과 관계를 단절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즉 회복 후에 병원에서 퇴원을 해서 집에 복귀를 한 후에 친가 형제들은 방문을 해서 완쾌를 축하해 주었는데 비해서 M 씨의 부인의 친정 가족 구성원들은 일체 발길을 끊어버린 것에서 M 부인의 어머니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한 큰딸에게 선전 포고로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M 부인은 지금까지의 친정 어머니의 부당한 편애에 분노가 다시 폭발해서 M 부인은 그 동안 잠잠 하던 정신분열증이 재발해서 약물을 복용을 해도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을 잔다고 해도 숙면이 되지 못하고 피로감과 공허감에 미칠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게 되면서 심각한 정신분열증으로 재발을 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시점에서 결혼한 아들이 2년 전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것을 기억을 해 내고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약물 치료를 받아왔으나 효과가 없으니 마지막으로 내가 심리치료를 받은 미국에서 공부를 한 훌륭한 심리치료자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 선생님에게 심리치료를 한번 받아보면 어떡하겠습니까?”라고 말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마침내 M 부인이 승낙을 하게 되면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M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M 부인이 어린 시절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들이 분석으로 드러나고 핵심 상처 이벤트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앞으로는 이 이벤트들의 치유의 과정이 다음 의 제 Ⅸ부에서 진행이 되어지게 되어질 것이다.

병의 근본 원인을 알아야 그 병을 치료를 할 수 있다는 말에서처럼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도 그 사람의 삶의 전체 과정을 통해서 모든 것들을 스크린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은 종합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가 몇 개월을 통해서 몸의 전체적인 검진을 통해서 어떤 부위에 상처가 이 환자의 질병의 근원이 되는가?를 찾아내고 그 다음에 그것에 합당한 약물을 처방하는 치료의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도 그 분석의 과정은 그 환자가 출생해서 지금 현재까지 그 사람이 삶에서 거쳐온 어린 시절의 양육의 과정과 발달 단계에서 생긴 결함과 상처들의 분석과 현재의 삶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을 통해서 그 환자의 전체의 마음의 발달 과정과 상처들의 분석이 완료되어져야 그 정신장애의 치료의 과정으로 진행이 이어지게 된다.

과거는 살아 있다 제 Ⅸ부에서는 위와 같은 분석으로 드러난 M 부인의 치료의 과정에서 M 부인의 정신분열증이 어떠한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서 M 부인이 10년 동안 3번이나 재발을 한 정신분열증으로부터 회복이 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과거는 살아 있다 제 Ⅸ부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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