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모습  

 

 과거는 살아 있다 5

 

 과거는 살아 있다 Ⅴ부에서는 어린 시절의 심리적인 상처가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그러한 상처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치료 되어지는지? 를 또 다른 치료 사례를 통해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

 30대 후반의 N씨는 결혼을 한지 몇 개월 되는 시점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해 왔다.

 치료자와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나서 1주일에 1 2시간으로 분석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N씨의 현재의 핵심 문제점: N씨는 SKY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엘리트로써 국내에 이름있는 외국계 대기업에서 회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회사에 입사 7년째 되는 해에 그 회사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전체 사원들 앞에서 어떤 분야를 연구해서 전체 사원들 앞에서 발표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서 사전에 많이 공부를 해서 모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만의 준비를 한 후에 발표 당일 그 회사의 직원들이 약 120명 정도 모인 대강당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발표 도중에 준비한 내용들이 생각이 나지 않고 머리 속에 하얗게 되고 말을 더듬거리고 발음이 어눌하고 안절부절 못해서 결국은 발표에 실패를 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이 문제는 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N씨를 따라다녔다. 이후에 팀장들의 모임이나 그룹 토론회에서 말을 할 때도 말이 잘 나오지 않고 더듬거리고 발음이 이상해지고 상사들과 동료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서 스스로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N씨는 회사 생활 약 10년 동안 다른 회사들보다 높은 상당한 봉급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저축한 돈이 없고 그의 봉급의 절반은 대출 이자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가진 경제적인 문제 즉 돈과 관계된 문제를 하소연을 했다. 자신이 직접 쓴 돈의 대출 이자들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 즉 가족 구성원들과 인친척들의 대출을 도와준 것 때문에 그들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자 N씨가 그의 월급에서 원금과 이자를 차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료자는 N씨의 문제가 불안장애에 속하는 수행 공포증으로 진단을 했다. 수행 공포증은 일반적으로 무대 공포증 혹은 발표 공포증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불안증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서면 부들부들 떨리고 목소리가 이상하게 되고 심하게 되면 현기증이 나고 어지럽고 메스껍고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생각이 나지 않고 말을 더듬거리거나 입이 마르거나 기침을 하게 되는 과도한 긴장 상태에서 자아의 컨트롤을 상실하는 불안증을 지칭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현재의 문제점들은 과거의 어린 시절에 받은 심리적 상처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들로 보고 그 문제의 뿌리를 찾아내서 제거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치료자는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과 부모님과 가족 관계 등을 통해서 과거의 성장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인 상처들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그 상처들과 지금 현재의 문제들이 어떻게 서로 뒤엉키고 연결되어져 있는가?를 밝혀내서 그 문제의 뿌리를 뽑아내야 해결이 된다는 점을 강조를 하면서 N씨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의 분석에 들어가게 되었다.

N씨의 삶의 역사: 아버지는 1970년대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고(그 당시는 대학생들이 더 물었다) 어머니는 은행장 출신으로 퇴직해서 시골에서 과수원(그 당시 은퇴 후에 전원 생활)하는 아버지의 장녀로 주위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결혼을 한 엘리트 출신들이었다. N씨는 서울이 아닌 지방의 소 도시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4살 아래인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대학 시절에 학도 호국단 단장(박정희 대통령의 시절에 대학의 총 학생 회장을 지칭)을 지낸 사람으로 아버지는 그 대학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를 한 사진을 가보로써 보관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N씨의 친가 형제들로부터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사람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결혼 직후에 아버지가 친구와 동업으로 거대한 백화점(몇 십 층짜리) 사업을 하다가 친구의 고소로 6개월간 감옥 생활을 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 후에 아버지는 몇 개의 사업을 시도를 했으나 번번히 실패를 했고 가지고 있는 부모님의 유산들을 탕진을 했다. 이후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전략해버렸다.

 아버지는 그 후에 한번도 사업에 성공하지 못했고 돈을 벌어서 어머니에게 가져다 준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 싸움으로 번졌고 술을 마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밀치고 폭력을 하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N씨에게는 한번도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N씨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백수 생활과 음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되면서 그 때 1살 정도였던 N씨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외조부는 어린 손자에게 정이 별로 없었다. N씨의 기억 속에는 외할아버지는 늘 엄격해고 호랑이처럼 무서운 할아버지였다. 외할머니 역시 따뜻하게 돌보아주지 않았다. N씨의 외조부 집에서 4-5년의 생활은 즐거웠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시골이어서 주변에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N씨는 혼자서 늘 개 여울에 나가서 가재를 잡거나 물놀이를 했던 기억들이 있었으나 외롭고 쓸쓸한 기억이 전부였다.

N씨의 초등학교 시절: N씨는 유치원에 다니지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문에 외갓집에서 부모님 집으로 합류를 하게 되었다. N씨의 집은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지하 방으로 아버지, 어머니, N씨 그리고 남동생이 네 식구가 살았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을 하러 나갔고 저녁 10시 혹은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귀가 했다. 아버지는 늘 집에 없었고 집에 있는 날은 술에 만취되어 어머니와 늘 부부 싸움을 했다. 어머니는 보험 회사원, 화장품 판매 혹은 다단계 등등 안 해본 일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으나 생활을 늘 최하위였다.

 N씨는 초등학교에 입학 하면서 동료들은 모두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데 정작 N씨는 글을 배우지 못하고 입학을 한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아침 7시경에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N씨를 학습 도구나 학습의 과정을 도와주지 못했다. 학교 입학 전에 가정 환경 조사서에는 아버지가 대졸, 어머니가 고졸 그리고 아버지의 직업은 사업가로 적혀 있어서 반에서 최고의 엘리트 부모님에 가장 부유한 자녀로 담임 선생님에게 인식이 되어졌다.

 그 당시에 선생님들은 치맛바람과 돈 봉투가 유행이었다. 선생님은 N씨의 부모가 한번도 학교를 찾아오거나 담임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에 항상 N씨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N씨는 학습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했다. 특별히 미술 시간 혹은 공작 시간에 필요한 준비물을 문방구에서 사가지고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학습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상처 1: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 학습 준비물을 사기 위해서 아침에 어머니에게 미술 시간에 준비물을 사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요구를 했다가 호되게 처벌을 받았다. 어머니는 노발대발해서 N씨를 때렸다. 어머니가 돈이 없어서 절절 매고 있는 것을 보고도 너는 눈치도 없이 돈을 요구하느냐? 라는 말이 가슴에 못으로 박혔다. 그 이후에 N씨는 한번도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이 문제는 어른이 된 N씨의 경제적인 문제와 연결되어져서 나중에 다시 분석이 되어질 것이다.

 학습 준비물을 살 돈이 없어서 준비를 하지 못해서 공부 시간에는 돈이 없어서 학습 준비물을 사지 못했다는 말을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N씨에게 물었을 때 잊어버렸습니다”. “모르고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게으른 학생으로 오인 되어져서 더욱 더 선생님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선생님은 N씨의 부모님이 사업가이고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라고 가정 환경 조사서에 기록된 것만 보고 어머니가 학교에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고 선생님에게 사례를 하지 않았다는 오해로 인해서 N씨를 철저히 미워했다. N씨는 미술 시간 혹은 공작 시간이 되면 늘 학생들 앞에서 준비물 부족으로 벌을 서야 했다.

상처 2: 부모님의 부부 싸움으로 아버지의 잦은 어머니 폭력 행사 때문에 N씨와 동생은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심한 날에는 N씨와 남동생은 집 밖으로 나와서 신문지 혹은 라면 박스를 뒤집어 쓰고 길거리에서 밤을 보낸 날도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에 N씨는 졸음이 와서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엎드리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가 N씨를 집적거리는 것에 화가 나서 씨발놈아!”라고 욕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담임 선생님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다. 그러나 선생님에게 친구가 나를 괴롭히는 것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욕설을 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미안해서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 선생님에게 씨발놈이라는 욕설을 한 것을 해명하지 못하고 죄를 지었다는 죄의식 때문에 N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무실 근처를 피해 다녔다.

상처 3: 학교 생활은 편안하지 못했다. 늘 짜증과 분노가 얼굴에 가득 차 있어서 인상이 좋지 않게 비쳤다.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싸움이 잦아서 친구들이 기피하는 학생으로 인식이 되었다. 이러한 동료들과 갈등 때문에 N씨는 선생님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고 토로 했다. N씨에게 초등학교 시절은 지옥과 같은 경험으로 남아 있었다.

상처 4: 어머니는 항상 전기 밥솥에 밥을 가득 해 놓고 그리고 크다란 솥에다 국을 한 통 끓어 놓고 몇 개의 반찬을 준비해 두고 일을 하러 갔다. N씨는 항상 목에 지하 방의 열쇠를 목걸이로 달고 다녔다. 서구에서 맞벌이 부부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목에 목걸이 대신에 열쇠를 목걸이로 달고 다니게 하는 유행어로 레치트 키(목이 걸고 다니는 열쇠의 영어 발음) 키드(어린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N씨에게 해당이 되었다.

 그는 집에 오면 열쇠로 방문을 열고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지하 방에서 밥과 국을 떠서 먹었다. 이러한 습관은 결혼 후에 부인이 여러 개의 맛있는 반찬을 준비해 주어도 남편인 N씨가 국 한 그릇에 밥을 말아서 먹은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서 지적을 했던 것을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쓸쓸하게 웃었다.

상처 5: 초등학교 5학년 때는 N씨가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학급에서 반장과 부반장들의 그룹과 어울릴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의사, 교사, 공무원인 동료들 5명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각자의 집에 5명을 초대를 해서 초대를 한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대접을 받았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면서 마지막으로 N씨의 차례가 왔을 때 N씨는 어머니가 갑자기 약속이 있어서 외출했다 혹은 어머니가 외갓집에 가고 없다는 핑계로 친구들을 초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N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하 방과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 혹은 어머니가 보험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말 등은 수치심과 모욕감 때문에 절대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친구가 돈 대신에 물려준 다방을 운영하게 되면서 출생 이후에 경제적으로 가장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방이 잘 운영되자 또 한 개의 다방을 경영하게 되면서 그것이 아버지의 분노의 도화선이 될 줄을 몰랐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다방 마담으로 많은 남자들을 만다는 것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의심을 해서 어머니를 폭행하는 빈도수가 많아졌다.

 한번은 아버지가 화가 나서 냉장고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래서 도망을 갔다. 중학교 1학년 시점에서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어머니를 폭행을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N씨가 야구 방망이로 아버지를 사정없이 때렸던 것을 보고 아버지가 깜짝 놀랜 모습을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방이 잘 되자 또 한 개의 다방을 운영하다가 실패하고 또 다시 삶이 빈곤해졌다. 큰집에서 집을 담보로 은행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게 되어 큰 집이 은행으로부터 차압을 당하게 되자 큰 집의 식구들이 N씨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면서 친척들로부터 당한 모욕감, 수치심이 N씨가 어른이 되어서 인친척들의 은행 대출금 보증으로 대출금 상황이 되지 않아서 원금과 이자를 N씨의 월급에서 차압을 당하는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N씨는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N씨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성적이 뛰어나서 선생님과 동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특별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장과 부반장을 맡아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선도를 해서 리더십이 뛰어난 학생으로 칭찬을 많이 받았다. N씨는 법과 대학을 가려고 하다가 성적이 약간 모자라서 SKY 대학에 경영학과에 합격을 했다.

 대학 시절: 아버지는 N씨의 xx 대학 경영학과에 합격을 한 것을 기뻐했다. 아버지는 아들 N씨를 데리고 서울에 와서 하숙집을 구해주고 내려갔다. 아버지와 몇 일 간 함께 보낸 시간은 N씨의 삶에서 아버지와 함께 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학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시점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로 손을 한번 제대로써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N씨는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은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다고 실토를 했다.

 잠깐 여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관계를 살펴 보자, 분석의 과정에서 어머니는 은행가의 큰 딸인 것은 틀림이 없었으나 친 어머니가 6.25 사변 때 비행기 폭격으로 사망하고 계모 밑에서 성장한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머니는 눈치, 비위를 맞추는 데는 전문가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는 alexithymia 라는 장애를 가진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감정을 대신으로 두 배로 표현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어머니는 절대로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상대방을 화를 내도록 도발하는 사람인 것이 이후의 N씨와 어머니관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N씨는 이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고로 아버지의 죽음은 어머니의 책임으로 보고 어머니에게 미움과 분노를 억압하고 있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대학 1학년 가늘 학기에 N씨는 서클 활동에 가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서클은 학생 운동을 하는 것을 지원해 주는 풍물 놀이 패였다. 그 당시에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학생 시위가 한창 일 때여서 학생들은 거의 매일 시위를 했다. 그러한 시위대 옆에서 시위 학생들을 격려해주는 노래를 불러주는 서클에 N씨가 가입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창 연습을 거친 후에 N씨가 독창으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마이크를 잡았는데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고 머리 속에 하얗게 되면서 노래 가사를 잊어버린 것이었다. 망신을 당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안절부절 하다가 풍물놀이 서클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수행 공포증이 등장을 한 것이 밝혀졌다. 이후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N씨는 그룹으로 연구 발표를 할 때에는 자료를 준비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절대로 직접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연단에 서서 발표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피해 다니게 된 것이었다. 대학 3학년 때 중국에 6개월간 연수를 간 적이 있었는데 학원에 등록을 해서 첫 날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나서 발표를 하는 프로그램 때문에 6 개월 동안 학원에 나가지 않고 하숙 방에 머물다가 귀국을 했고 군대 복무를 끝내고 복학해서 졸업을 하면서 국내에 있는 이름 있는 외국인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 회사에서 근무를 한지 7년 만에 120명이 모인 대 강당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실패를 하고 망신과 모욕을 당한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경제적인 문제점

사건 1: N씨가 회사원 생활을 시작해서 다른 회사에 비해서 높은 봉급의 대우를 받았다. 처음에는 상당한 저축을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사업 실패로 아들 N씨에게 은행 대출을 부탁을 했다. N씨는 어머니를 위해서 5천만 원을 대출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업에 실패를 했고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이자와 원금을 N씨가 갚아주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는 여러 번 사업을 위해서 아들 N씨에게 은행 대출을 요구를 했다 .몇 번 실패를 거듭하면서 어머니에게 No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 아침에 N씨의 원룸 앞에 앉아서 시위를 했다. 퇴근 후에도 어머니는 그대로 시위를 했다 할 수 없이 빌려준 돈이 1억이 넘었지만 어머니는 한 푼도 갚지 않았다.

사건 2: 남동생이 형님인 N씨를 찾아왔다. 남동생은 부모님의 잦은 부부 싸움으로 중학교 시절에 가출을 자주 해서 공부를 포기해버렸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남동생은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삐뚤어져 버렸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남동생과 바둑을 두면 늘 남동생이 이겼다고 했다.

 남동생은 중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았고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부모님의 속을 썩였다. 아버지가 남동생을 아버지의 대학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xx 항공고등학교에 서류를 제출해서 그 학교에 가서 비행 정비사가 되어라 라고 했지만 남동생은 거부하고 가출해버렸다. 그 이후에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형님인 N씨를 찾아온 것이었다.

좋은 자리가 있는데 5천만 원만 도와달라고 했다. N씨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5천 만원을 대출해 주었다. 그런데 그 후에 연락이 되지 않아서 동생이 일을 하는 곳에 찾아가 보았더니 동생은 그 돈으로 도박을 해서 날려버리고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동생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형님인 N씨에게 사기를 친 것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사건 3: 결혼 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부인의 가족인 처가의 장인과 장모님이 회사로 직접 찾아왔다. 장인과 장모님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6천만 원의 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6층 건물이 빠른 시일에 매각이 되면 즉각 되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N씨는 은행에 대출로써 6천만 원을 대출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장인과 장모님은 대출의 원금은 물론이고 대출의 이자로 몇 개월 지불한 후에 중지해 버렸다.

 N씨가 장인 장모님에게 간청을 했지만 장인, 장모님은 가지고 있는 6층 건물이 매각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위의 가족과 인친척들의 은행 대출의 빚은 고스란히 N씨의 봉급에서 차압을 당하고 있었다. 고로 지금 월급을 받으면 절반 정도가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날아가버려서 억울하다고 했다. N씨는 그러한 돈들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N씨가 고스란히 그 돈들의 원금과 이자를 물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사건 4: N씨는 또 다른 돈과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새내기 후배가 입사를 했다. 입사 축하 파티가 끝나고 저녁 10가 넘어서 다들 집으로 가려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새내기 여성 사원이 팀장인 N씨에게 늦어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택시 비용을 빌려 달라고 했다. N씨는 두말 하지 않고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주었다.

 그러나 며칠 이지나가도 그 새내기 후배는 3만원을 갚으려고 하지 않았다. 잊어버렸는지 그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N씨는 그 새내기 후배에게 3만원을 달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하면 짠 돌이 팀장으로 짜잔 한 사나이로 비난을 받을 것 같아서 빌려간 돈을 돌려 달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돈을 선배로써 팀장으로써 후배에게 선심을 쓴 것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그 후배를 볼 때마다 그 돈 생각이 떠 올라서 미치겠다고 했다.

사건 5: N씨는 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면 친구가 없었다. 대학 시절에도 친하게 지낸 친구가 없었다. 유일하게 학교 시절에 가장 전성기였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장으로 늘 활동을 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 취업을 한 후에 몇 번의 동창회 모임에 참가를 했다. 고교 동창들 중에서 가장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으로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축하 파티 모임이 끝나고 계산서가 돌아올 시점이면 동료들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네가 가장 출세를 했느니 오늘 동창회 모임의 비용은 네가 전부 지불하라”, “너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있느니 돈을 쓸 곳이 없지 않느냐?””우리는 모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돈이 어디로 갔는지 봉급을 타고 나면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등등으로 모두가 오리발을 내 미는 것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당연히 N씨가 결재를 했다. 사실은 월급에서 절반이 은행 대출금과 이자로 나가고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사건 6: 한번은 고교 동창회 모임에서 저녁에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헤어질 때 N씨가 스스로 결재를 하겠다고 해서 돈을 지불을 했다(그 당시에는 카드 결제가 없었고 현금으로 지불).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 지갑을 열러 보니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이미 12시가 넘어서 막차가 떠난 후였다. 택시 비용이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N씨는 밤새도록 3시간을 걸어서 새벽 3시에 집에 도착을 했다. 그는 혼자서 밤길을 걸어 오면서 N씨는 왜 내가 바보 같이 이런 행동을 매번 되풀이 하고 있는가? “탄식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감정적인 문제들

 N씨는 감정의 표현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석으로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눈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 남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잦은 부부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눈치가 빨랐다. 어머니는 생활 전선에서 바빠서 N씨 형제를 돌보아줄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어머니가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없는 alexithymia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써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으로 늘 분노, 감정이 억압되어져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에 감정을 어떻게 표현을 하는 것인지를 배울 수가 없었다.

이벤트 1: 초등학교 시절에는 늘 짜증, 분노, 노여움, 화가 잔뜩 얼굴에 씌어 있어서 얼굴 표정이 찌그러지고 경직되어 있어서 동료들과 자주 싸우고 갈등이 많았다. 그는 분노를 억압하고 참고 살아왔다고 스스로 자백을 했다.

이벤트 2: 사회인이 되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신문, TV 방송에서 노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혹은 비평하는 것을 보면 참을 수 없어 분노했다. 가장 많이 비난을 하는 xx 신문사 옆을 지나가면서 승용차에 휘발유를 싣고 xx 신문사에 차를 타고 돌진해서 불을 질러버릴까?하는 생각을 했다고 스스로 털어 놓았다.

이벤트 3: 자가용 승용차를 운전을 하고 가다가 옆 차가 경적을 울리거나 끼어들기를 하면 그 차를 끝까지 따라가서 보복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토로 했다. 분명히 스스로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행동을 한다고 했다.

이벤트 4: 한번은 승용차를 정비를 하려고 정비소를 찾아가서 주차를 하다가 옆 사람과 시비가 붙어서 화가 나서 뒤 트렁크 안에 있던 쇠뭉치로 그 사람의 머리를 내래 치려고 할 때 정비사가 뛰어들어서 N씨의 몸을 막아서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경찰에 고소를 해서 그를 달래서 고소 취하는 하기는 했지만 만약에 그 때 그 사람의 머리를 쇠뭉치로 내려 쳤다면 그는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아찔한 순간을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 속에 억압된 분노를 치료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

이벤트 5: 어머니가 계속해서 돈을 빌려가면서 한번도 갚지 않고 계속해서 은행 대출을 해 달라고 보채는 것에 화가 나서 전화 통에다 대고 어머니에게 쌍 욕을 한 것을 스스로 털어 놓았다. 어머니에게 직접 “xxx !”왜 내 돈을 갚겠다고 하고 빌려 가서 한번도 갚지 않았느냐?” “개 같은 xxx !” “씨발년!” 등등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욕설을 한번도 아니고 수 차례 한 것을 토로 했다.

 이 사건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감정 소통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어머니는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편인 아버지를 어머니 대신에 화를 두 배로 내도록 만들고 있는 것에서 아버지는 분노가 치솟아 올라서 감정을 신체적인 폭력과 언어 폭력으로 표현을 했고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인 N씨를 감정을 폭발하게 해서 쌍 욕으로 어머니에게 화를 표현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에서 어머니는 분명히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인 alexithymia임이 틀림이 없고 N씨는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어머니에게 화를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언어 폭력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이 유사점으로 지적을 했을 때 N씨는 시인을 했다.

위와 같은 내용의 분석 데이트가 수집이 되는 데 6개월의 기간이 흘러갔다. N씨는 다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 계속해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부부 문제: N씨는 결혼 4개월 정도의 시쯤에서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몇 주일간 치료를 받으면서도 부인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일제하지 않았다고 토로 했다. 부인은 임신 1개월로 앞으로 자녀가 태어나게 될 터인데 N씨는 앞으로 태어날 자녀와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호소를 했다.

 부인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유학파로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서 국내에 있는 프랑스 계통의 회사에 근무를 하다가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서 서로 알게 되었고 만난 후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N씨는 결혼 당시에 30대 중반이었고 부인 역시 30대 중반으로써 두 사람이 평균 결혼 나이보다 약간 늦게 결혼을 했다고 했다.

 결혼 후에 N씨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았고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부인 역시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고로 장인 장모님이 6층짜리 건물을 빌미로 사위인 N씨에게 6천만 원을 대출받게 해서 원금과 이자를 몇 년에 갚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부인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 이외의 이야기는 없었다고 했다.

 부인은 결혼 후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임신으로 출산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인 역시 몇 년 간 회사원으로 일을 했지만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고 N씨 역시 회사원 생활이 10년이 넘었지만 저축한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앞으로 자녀가 태어나면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을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N씨는 같이 입사한 동료들은 일찍 결혼을 해서 빨리 아파트를 마련한 친구들은 벌써 그 아파트가 값이 올라서 10억 정도의 돈을 모았는데 정작 자신은 10년의 결혼 생활에서 저축이 한 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직접 낭비로써 그가 소비를 한 돈이 아니라는 점에서 통탄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토요일과 일요일과 혹은 공휴일에는 부부 사이에 서로 대화가 없어서 서로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컴퓨터만 만지고 게임만 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빨리 서로 소통을 하고 정상적인 부부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다.

과거는 살아 있다 Ⅵ부에서는 N씨의 문제들이 어떻게 치료의 과정에서 다루어지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와 과정을 거치면서 N씨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http://blog.naver.com/psychclinic/220683092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