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모습 

 과거는 살아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과거를 중요시 한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고 본다. 이런 주장들은 일반적인 상식들과는 반대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가 아닌가!라고 반문을 한다. 그래서 지금 현재가 미래를 결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면서 현재와 미래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변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세월이 약이 겠지요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시간이 흘러가면 과거는 정리가 되고 기억에서 잊혀지게 된다는 것을 수 없이 익혀 들어왔다. 과거에 받은 심리적인 상처들은 세월이 가면 저절로 머리 속에서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잊혀지고 사라진다는 경험에서 나온 경구들이 아닌가!

과연 과거의 상처들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인가? 라는 위문들은 프로이트의 등장으로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이론이 등장하면서 위의 철칙 같은 공식들이 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고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의식으로 기억을 하는 것은 빙산의 물 위에 떠 있는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고 물 속에서 가라앉아서 보이지 않는 빙산의 4분의 3은 무의식으로 무의식 속에서 억압되어져서 의식 속에 떠 오르지 않는 것일 뿐 과거의 모든 기억들은 무의식 속에서 남아 있다는 프로이트 이론이 등장하면서 20세의 지성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왜 과거가 중요한지?는 인간의 역사를 더듬어 보아야 이해가 갈 것이다. 문화 인류학자들과 역사가들에 의하면 인간의 등장과 함께 병든 마음, 정신에 대한 치유가 함께 시작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병든 마음을 치유를 한 사람들이 원시 부족들 사이에서 샤만(shaman) 들 즉 무당들이었다. 어느 부족이든지 원시 부족들은 사먄 인들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마음의 연구가 과학적으로 시작되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최초의 마음의 병명을 신조어로 만들어냈다. 여성들에게 흔했던 병으로 자궁이 떠 돌아다니면서 마음의 병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히스트(hyster)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자궁이라는 말에 i 라는 병(illness의 첫 글자)이 조합이 되어 만들어진 말이다(Ellenberg, 1975).

고대 시대의 마음에 과학적인 접근은 중세의 기독교 시대로 접어 들면서 마음, 정신은 혼(spirit), 영혼(soul), 심령(spiritism)으로 바뀌게 된다. 정신 이상은 혼이 나갔다. 혼이 빠졌다 그리고 도망을 간 혼, 영혼을 되찾아 오는 의식(儀式)을 샤만 인들의 춤으로 그리고 마음의 병, 정신병은 악마, 귀신의 장난으로 바뀌게 된다. 마음이 병들었다는 귀신에 씌었다. 귀신에 흘렸다 로 변하게 된다. 원시시대에 마음의 병을 치유를 하는 사람들인 샤만(shaman), 무당들로부터 중세시대에는 귀신을 쫓아 내는 굿(exorcism)을 하는 캐토릭 사제들과 신부들로 바뀌게 된다(Ellenberg, 1975).

마음의 병, 정신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치료가 시작된 것은 과학의 등장(만류 인력, 전기 이론, 자장 이론 등과 생물학의 등장)과 궤도를 함께 한다. 계몽주의 의 등장으로 무지, 미신, 맹목적인 믿음의 중세의 틀에서 벗어나서 교육, 이성, 과학의 덕분으로 귀신에 흘린 것이 마음이 병든 것으로 귀신을 좇아 내는 굿(exorcism)이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병 이름으로 바뀌게 되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18세기에 말에 등장한 메즈머(Mesmer)의 덕분이다.

메즈머가 동물 자석이론, 자장 이론으로 건강한 사람의 몸으로부터 유체가 흘러나와서 병든 사람으로 이동을 한다는 유체 이론을 등장시킨 장본인이다. 메즈머는 자신이 위대한 발견을 하고서고 그것을 모르고 죽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콜롬버스로 그가 신대륙 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모르고 죽은 사람으로 역사가들에 의해서 기록이 되고 있다(Ellenberg, 1975).

메즈머는 의과 대학 출신의 의사에다 과학자였다. 그는 법학을 전공하다 신학으로 그리고 마지막에 의학을 전공한 늦깎이 의사로 자석으로 치료를 하는 동물 자석 이론을 체계화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자석 치료 이론은 이후에 제자들에 의해서 자석 치료의 힘이 아닌 제시(suggestion)의 힘, 그리고 그가 치료의 과정에서 사용한 쇠 막대기인 레포, 라포(rapport)는 실제로 유체가 그 막대기를 통해서 전달이 되는 것이 아니고 치료사와 환자 사이에 상호 믿음의 작용의 힘(상호 신뢰감)으로 유체 이론은 심리적 에너지 이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리고 이후에 동물 자석 이론 즉 유체 이론은 영국의 만체스트의 외과 의사인 브레이드(Braid)에 의해서 1843년에 최면(hypnosis)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최면은 그리스어로 잠의 여신 hypno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상적인 잠, 수면과는 다른 인공 몽유병과 같은 잠 속에서 치료사와 환자가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잠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러나 잠을 자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Ellenberg, 1975).

메즈머는 오스트리아에서 맹렬한 위세를 떨치다가 16세의 소녀 장님의 눈을 띄게 하는데 실패하는 바람에 몰락하고 프랑스로 이전해서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위세를 떨쳤다. 전국적인 메즈머 열풍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과학자, 의사, 법학자들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7인의 수사 위원회의 조사 결과 메즈머가 주장한 만류 인력에 버금가는 유체 이론의 주장은 허구임이 밝혀지면서 메즈머는 역사에서 사라졌다(그러나 왕에게 전달된 그 백서는 부분적인 치료의 효과는 인정을 했다)(Ellenberg, 1975).

이후에 메즈머의 이론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어 다시 자라나게 된다. 프랑스의 포병 장교 출신의 퓨이세이그(Puysegur)가 훈련 도중에 빅토르(Victor)라는 병사가 발작해서 쓰러졌을 때 그에게 자석 치료를 사용해서 잠과 유사한 상황에서 과거의 상처 기억을 회상할 수 있었지만 깨어나서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호기심의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후에 그의 사례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학회에 보고를 하고 본격적인 연구로 이어져서 약 200 명의 제자들이 활동을 하게 되면서 신부인 파리아(Faria), 경험론자인 들레즈(Deleuze), 의사인 베르트랑(Bertrand), 해군 장교 노이제(Noizet), 외과 의사 브리켓(Briquet), 데스피네(Despine), 두 포테(Du Potet)등에 의해서 동물 자석이론은 과학적인 모습을 갖춘 최면학으로 유체 이론은 심리적 에너지 이론으로 탈 바꿈해서 프랑스 전역으로 불꽃처럼 번져나게 되어 19세기에 프랑스에서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독일과 이태리 등 유럽을 휩쓸게 된다(Ellenberg, 1975).

프랑스에서는 자석 치료사들을 양성을 하는 학교가 설립이 되었다. 의사로써 돈을 받지 않고 이상한 치료를 하고 있는 라보(Liebault)라는 괴짜 의사를 방문한 후에 그의 치료에 매력과 호기심으로 그의 제자가 된 의과 대학 내과 교수인 베른헤임(Bernheim)를 중심으로 한 낸시 학교(Nancy School)와 가르코트(Charcot)를 중심으로 한 살페트리에 학교(Salpetriere School)가 그것이다.  메즈머(Mesmer)의 동물 자석 이론과 유체 이론은 과학의 발달에 힘을 입어서 마음의 에너지, 심리적 에너지 이론으로 바뀌게 된다. 베른헤임과 카르코트는 의과대학 내과 교수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의사로써 프랑스에서 두 개의 학교가 서로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Ellenberg, 1975).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 의과 대학의 5년 과정을 해부학 연구실에서 연구 조교를 하면서 8년 만에 졸업하고 해부학에 자신만만한 의사로써 개업을 하고 새 출발을 했다. 개업을 했지만 새내기 의사로써 환자가 없어서 그의 선배이자 대학 시절에 그의 스승처럼 그를 돌보아준 브로이어(Brerer)를 찾아가서 환자를 구걸을 하게 되었다. 브로이어는 개업 후에 이미 명의가 되어 있었다. 브로이어는 그가 2년 동안 치료를 하고 있던 유태인 백만 장자의 딸인 안나 오(Anna O)라는 여성을 프로이트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프로이트는 개업 의사로써 첫 번째 환자인 안나 오(Anna O)라는 여성에 의해서 프로이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녀는 한번씩 오른 쪽 팔의 무감각적인 마비, 종종 모국어를 말을 할 수 없어 영어를 사용(그녀는 5개 국어를 사용하는 21세의 인텔리 여성), 손가락이 뱀으로 보이는 환각 증세, 오랜지 주스를 마실 수 없는 증세 등의 여러 가지 증세들을 가진 환자로써 종합 검진 결과 신체적인 이상이 없는 환자였다. 의사로써 그의 지식이 무용지물임을 깨달음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에게 찾아가서 그녀를 2년 동안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그녀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물어 본 결과 그녀의 병명이 히스테리아(hysteria) 라는 병임을 알게 되었고 최면으로 치료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최면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프랑스로 1년 간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히스테리아의 치료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히스테리아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르코트(Charcot)가 있었다. 가르코트는 외과 의사인 브리케(Briquet)로부터 최면학을 전수를 받아서 꾸준한 연구를 했고 그리고 마침내 지금까지 최면학에 대해서 3번이나 거부 반응을 보여왔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최면학의 연구를 발표하게 되면서 프랑스 과학계로 하여금 최면학을 인정으로 수용하게 만든 공로로써 프랑스 의학계에서 혜성처럼 떠 오른 사람이었다.

가르코트는는 왕의 주치의로 의과 대학 내과 교수이자 히스테리아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가르코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프랑스의 살페트리에(Salpetriere) 병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병원에는 4,000-5,000명의 히스테리아 환자, 거지, 매춘부, 부랑아의 합숙소였다. 가르코트(Charcot)가 그 병원에 원장으로 부임한 몇 년 만에 세계적인 히스테리아 환자들의 치료의 실험실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가르코트는 히스테리아 환자들을 최면으로 치료를 했다.

매주 마다 화요일에는 제자들과 명사들 앞에서 직접 시범으로 히스테리아 환자들을 치료하는 시연을 보여주고 금요일에는 세계적인 제자들과 명사들에게 강연을 했다(Ellenberg, 1975). 이것이 이후에 프로이트가 따가지고 베엔나(Vienna)로 가지고 가서 매주 화요일에 정신분석에 흥미가 있는 제자들과 모임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정신분석 학회로 태어나게 된다. 가르코트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두 명의 과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프랑스가 자랑하는 과학자로써 두사람 즉 파스테르와 가르코트가 있다. 그는 의과 대학에 최면학을 소개를 해서 마비 환자, 몽유병 환자, 강경증(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직된 자세의 증세), 관절염, 통풍 등의 질병에 최면으로 치료한 공적을 인정을 받고 있다. 그의 죽음은 파리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Ellenberg, 1975).

프로이트가 이 시점에서 바로 전 세계에서 모여든 제자들과 명사들 속에서 이름 없는 새내기 의사로써 그 곳에서 1년 동안 참가하고 관찰하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최면에 걸린 히스테리아 환자들이 어린 시절의 근친상간, 강간 그리고 폭력 등의 과거의 상처들을 치료사인 가르코트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최면에서 깨어 나서는 그것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최면을 배워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로 귀국해서 히스테리아 환자를 치료를 하면서 프로이트는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은 최면으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최면과 유사한 마음의 상황을 만들어 내서 의식의 기억의 조각들을 연결 시켜서 무의식 속에 묻혀 있는 과거의 상처의 기억의 연결로 이끌어 내는 치료의 기법으로 자유 연상이라는 기법을 그리고 꿈의 분석으로 무의식에 접근을 하는 방법 그리고 말의 실수 등을 통해서 무의식적인 표현에서 흔적을 찾는 방법을 고안해 낸 치료 방법이 바로 정신분석으로 탄생이 된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모든 것을 다 기억을 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기(최근의 연구에서 임신 7개월 때 태아는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엄마와 태아의 주고 받는 대화의 놀이 기구가 등장)에서 시작해서 출산 후에서 지금까지 의식으로 기억을 하는 것은 겨우 빙산의 물 위에 떠 있는 4분의 1 정도이고 나머지 4분의 3은 기억을 하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서 묻혀 있다. 무의식은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없다. 고로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말의 실수 등을 통해서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이다.

하버드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모델(Modell, 2003)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만 우리는 상상 속에서 과거로 언제든지 되돌아갈 수 있다고 이론화 했다. 그는 시간을 물리적 시간과 순환적 시간으로 나누었다. 물리적 시간은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지금 현재는 시간이 지나가면 과거가 되고 미래를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이 된다. 그러나 순환적 시간은 우리는 기억 속에서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 아닌가! 상상 속의 과거는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과거는 살아 있다.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다. 과거를 모르면 우리는 영원히 과거를 반복하는 저주를 받게 된다. 라는 말들이 정신분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다. 여기에 대해서 재 조명으로 시작해 보자.

정신분석에서는 마음 혹은 정신이라는 말은 의식적이거나 혹은 무의식적인 경험의 집합으로 설명을 한다. 내 마음 속의 경험의 집합을 자아(self) 혹은 나(ego)로써 표현을 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내 마음은 태어날 때 가지게 되는 선천적인 욕구인 나를 원초자아(id), 양심적인 나를 초자아(superego), 그리고 현재의 나를 작동을 시키는 현실적인 자아를 ego라고 표현을 했다. 프로이트는 원초자아, 현실적 자아 그리고 초자아의 세 개의 세분화 된 자아들이 통합을 이루고 한 개의 마음으로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즉 자아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자아는 과거의 경험의 총합이 아닌가?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내 자아 즉 나는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총 경험의 집합으로 본 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까지의 모든 경험의 산물이 아닌가?

고로 이 경험들의 총 집합 즉 내 자아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내일을 결정하는 것이고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즉 과거의 내 모든 경험들은 내 기억 속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저장되어져 있고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어서 이 자아가 오늘을 살고 있고 내일의 계획을 하고 미래를 설계를 하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삶에서 중요한 어떤 결정을 할 때(사업, 결혼, 취업, 대학 선택 등등) 우리는 신중하게 이것 저것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생각해 보고 요모조모 뜯어보고 그리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보들을 모아서 분석해 보고 여러 사람들의 조언들과 경험들을 총 동원해서 최종 결정을 할 때 이러한 정보를 저장하고 취합하고 결정을 내리고 있는 내 자아는 바로 과거의 내 경험의 총합이 아닌가! 고로 과거의 경험들의 집합이 현재를 행동하게 만들고 미래를 결정하도록 만들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 그리고 해외 연수를 통해서 얻는 경험들 그리고 배낭 여행 등으로 쌓은 경험 그리고 배우고 공부하고 지식을 쌓은 것 등등 모든 것은 지식과 경험들을 풍부하게 해서 내 자아의 능력을 배양하고 키워서 오늘의 내 행동을 올바르게 하고 내일의 미래의 행복을 하기 위함이 아닌가? 과거의 경험이 바로 현재를 결정하고 미래를 결정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내 자아의 어제까지의 모든 경험들이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그리고 미래를 결정하는 요소들이 아닌가!

고로 과거는 내 기억 속에 내 자아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과거는 내 의식 속에서 내 무의식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본다면 오늘의 나는 바로 과거의 경험들의 결정체가 오늘 내 자신이 아닌가!

최근에 등장한 심리학자들의 이론 중에 하나는 지금의 나는 한 순간의 결정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고로 어떤 결정을 하느냐?의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백두산 꼭대기에서 떨어진 물이 압록강으로 흘러가느냐 두만강으로 흘러가느냐?는 한 순간적에 떨어진 물방물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느냐? 즉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A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느냐? B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가? 하는 그 결정이 나의 미래가 된다. 고로 그 순간적인 결정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을 한다, 이것은 그 결정에 따라서 내 삶이 A가 되느냐? B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임을 강조 하고 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순간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라는 것은 과거의 내 경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결정을 내리는 내 자아는 바로 과거의 경험의 총 집합에 의해서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그 자아가 아닌가? 역시 과거의 경험이 핵심 문제가 된다.

사람의 마음은 과거의 경험의 총 집합으로 이러한 과거의 경험들이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서로 수 많은 경험들이 잘 연결이 되어 있는데 이러한 경험의 연결의 힘을 자아 응집력(Self Coherency, Self-Constancy(행동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심리적인 상처들 즉 마음의 상처들이 많이 많은 경우에는 자아 응집력이 약하거나 경험들이 끊어지게 되면 자아의 힘이 약하게 된. 즉 마음의 상처들인 trauma 들이 자아의 힘을 약하게 만들어서 자신감이 약하게 되고 자존감이 약하게 되고 자긍심의 손상으로 연결되어지게 된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들이 기억 속에서 떠 오르게 되면 고개를 흔들어서 피하려고 하고 그리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즉 과거를 묻지 마세요 가 된다. 과거를 묻지 않고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하게 되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어 잊어버리게 되지만 기억 속의 어딘 가에 묻혀서 우리의 현재의 행동에 그리고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프로이트가 심리적인 상처를 가진 사람들 혹은 이상 행동들의 치료 과정에서 밝혀낸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3- 5세의 오디팔 기간을 중요시 한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어린이들의 섹스 욕구가 표면화 되고 남자로써 여자로서 성별의 구분이 시작되고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성숙과 발달이 시작되는 기간으로 보았다. 이 단계에서 오디프스의 삼각 관계가 시작되면서 아버지, 어머니와 어린이의 관계가 이후의 발달 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더 붙여서 프로이트는 어른 환자들의 신경증 치료 과정에서 기억의 회상의 최하가 3 세까지였기 때문에 3-5세가 강조된 것이었다. 이후에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과 페비안(Fairbarin)이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이론을 어린이 치료에서 적용해 보았을 때 오디프스의 삼각 관계 보다는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유아들과 엄마 사이에 상호 관계가 관찰되고 기록이 되어지고 유아들의 치료 과정에서 어른들의 연상의 분석과 꿈 분석이 어린이들에게 사용되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크레인은 놀이 치료를 고안해 내서 꿈 분석 대신으로 놀이를 분석해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치료 쪽으로 강조되면서 프로이트의 오디프스의 3-5세의 강조가 크레인과 페비안의 0-3세까지의 중요성으로 이동이 되면서 아기와 엄마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 Theory)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통파 정신분석이거나 혹은 크레인과 페비안(Fairbain)의 대상관계 이론이든지 간에 정신분석에서는 0- 5, 6세까지의 어린 시절이 강조되고 있다. 단지 0-3세의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의 결과가 3-5세의 성격의 골격에 단초가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특별히 어린 시절의 상처가 중요시 된다는 점이다. 마음의 상처들은 경험의 연결에 흠집을 내게 되고 과거의 경험들이 죽은 경험으로 변질되어서 무의식 속에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자아의 응집력에 영향을 미쳐서 과거의 경험이 현재를 행동하게 하는데 그리고 내일을 결정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결과들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모든 어른들의 상처의 원형에는 유아기의 상처들이 있다고 강조를 하고 있다. 즉 대상의 상실(엄마의 상실), 대상 사랑의 상실(엄마 사랑의 상실) 그리고 좌절의 상처(욕구 불만족으로부터 오는 상처 욕구 이론에서 상세하게 다룰 예정)들이 숨어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이후 단추들은 줄줄이 영향을 받게 된다. 첫 단추를 바로 채우지 않고 뒤에 있는 단추를 다시 끼우거나 다시 새로 갈아 달거나 혹은 아무리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약간 불편함이 줄어지거나 편안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신분석 치료에서 모든 어른 시절의 상처의 뿌리에는 유아기의 상처로 연결되어진다는 것으로 비유를 하고 있다.

 이제 과거의 상처 이론으로 되돌아가 보자. 과거의 상처들은 지금 현재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졌다고 해도 무의식 속에서 묻혀져 있어서 지금 현재의 내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과거의 상처가 많을수록 그 경험은 현재의 내 자아의 총 집합에서 필요한 요소로써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죽은 경험으로 자아 응집력을 약하게 만들어서 자신감, 자존감, 자긍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옛날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말은 과거의 어떤 상처 경험에서 놀란 사람들이 현재에서 과거와 유사한 경험을 만나게 되면 과거의 상처로 오인해서 도망을 가거나 피하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과거의 상처에서 온 죽은 경험들을 무의식 속에서 찾아내어 의식으로 끌어 올려서 그것을 닦아 내고 씻어내고 정화의 과정을 거쳐서 살아 있는 경험으로 자아 속에 통합을 시켜서 자아 응집력을 높이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감, 자존감, 자긍심을 높이는 치료를 하고 있다.

치료자는 어린 시절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이 말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패를 해야 성공한다는 말인가? 성공을 하면 되지 왜 실패를 해야 한단 말인가? 라고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내가 미국에서 치료 심리학을 공부를 하면서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실패를 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다라는 말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스스로 볼 수가 없다. 단지 상상 속에서 우리의 자아를 내면 관찰로써 관찰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서만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나를 거울이 왜곡 되면 나 자아 이미지가 왜곡될 수 있다.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부모님이고 선생님들이고 친구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내 자아를 알게 되고 내 자아가 형성되어져 간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도 내 눈에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라는 말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자아는 정확하게 평가를 할 수 있고 볼 수 있지만 정작 내 자아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내 자아의 결함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것은 내가 내 자신의 과거의 상처들을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고 내가 알고 있다고 해도 내 단점으로 수치심으로 모욕감으로 멸시, 조롱으로 숨기고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정신분석학자인 셀리번은 엄마의 평가가 내 자아가 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엄마를 통해서 내 자아의 형성이 시작된다는 말을 함축한 것이다. 이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사람이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마가렛트 몰러(Margaret Mahler, 1975)이다.

출생 직후에 아기는 자아가 없다.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관계를 통해서 엄마의 아기에 대한 마음이 반사되어져서 즉 엄마의 기대, 소망이 아기의 마음 속에 반사되어져서 이것이 아기의 자아로 탄생하게 된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한 사람이다. 초반기에 프로이트 이론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너무나 소설적이다(실험에서 나온 이론이 아닌)라고 극심한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프로이트 이론을 직접 실험으로 입증한 사람이 마가렛트 몰러이다. 그녀는 1950년 대에 뉴욕의 마스터 어린이 센터(Master Children Center) 에서 출생 직후의 4명의 어린이들을 자연스러운 가족 환경에서 자라나게 한 시설을 통해서 3세까지 4년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해서 그 후에 10년 동안 추적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결과들을 종합해서 나온 그녀의 유명한 저서 인간 유아의 심리적인 탄생: 너와 나의 하나됨과 분리-개인화”(1975)”에서 인간 발달의 과정을 세분화 시켜서 이론화 한 두 번째 세부 기간의엄마와 아기의 하나됨의 단계이론은 이후에 대상 관계 이론의 정신분석 치료 이론의 초석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늘 사용해온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은 화의 원인을 알고 그것을 바로 잡으면 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로써 해석이 되어질 수 있다. 화 즉 불행을 알아야 복으로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 말은 IMF 때 많이 사용하게 된 위기(危機)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위기 속에는 기회가 있다 즉 위기가 오는 것은 내 자아의 결함 때문에 내 자아가 나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경고 신호이기 때문에 이것을 숨기거나 피하거나 도망을 하지 말고 그것을 분석으로 알게 되면 내 자아의 단점을 알고 고치게 되면 이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작년 여름에 서울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들을 초빙해서 그들의 사업의 성공의 비결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한결 같이 자신의 실패를 거울 삼아서 자신의 결함들을 수정한 결과 성공을 했다(헤럴드 경제, 2015, 5, 22)는 말들을 이구동성으로 했다.

각 분야에서 성공해 부()를 쌓은 부호들에게도 그 동안 거쳐간 수많은 실패가 있다. 남들보다 일찍 성공을 이룬 부호나 오랜 기간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억만장자 모두 ‘실패는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고 말한다”(헤럴드 경제, 2015, 5. 22).

과거의 실패를 거울을 삼아서 자신의 결함을 볼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에서 과거의 잊어버린 상처들을 찾아내고 닦아 내고 씻어내고 마음의 정화를 거쳐서 죽은 경험을 살아 있는 경험으로 되살려서 자아의 총 집합 경험에 통합시킨다는 의미가 아닌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나오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알마레나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라는 음악은 우리의 귀에 익숙한 노래이다. 그 노래 가사의 일부는 가혹한 운명과 자유의 탄식 가운데 울도록 나를 내버려두오!,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숙명인 나의 영혼의 영원한 고통 속에 살게 하지만 사랑하는 이어 나를 버려두오! 자유의 탄식 가운데 ----“(영화 "파리넬리"에서 번역의 인용). 이 노래 가사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으로 울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닥치는 실패들을 우리 자신의 가혹한 운명으로 숙명으로 탄식을 한다. 한 가정에서 반복해서 실패를 거듭하게 되면 우리는 조상 탓, 운명 탓으로 돌리면서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불교에서는 조상의 죄의 탓으로 받는 벌) 이렇게 연속해서 가혹한 벌을 내리시는지?”를 탄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이것은 조상 탓도 아니고 운명 탓도 아닌 내 과거의 상처가 내 자아에 통합되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 묻혀서 현재와 미래에 내 자아의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과거 폭군의 행포라고 부른다(Shafer, 1983). “우리는 과거를 잊고 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라는 정신분석에서 자주 사용하는 유명한 문구는 우리가 과거를 알지 못하면 평생 동안 이러한 실패를 반복한다라고 보고 있음을 회화화 한 말이 아닌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이러한 과거의 폭군인 상처들을 무의식 속에서 분석을 통해서 찾아내고 밝혀내어서 그 환자의 과거를 보는 시각을 수정하고 그러한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도록 해방을 시키는 것에서 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상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는 살아 있다 Ⅱ에서는 어린 시절의 받은 상처가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실제 치료 사례를 통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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