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완전 정복 1

  

우울증은 미국의 정신의학 학회에서 발간되는 DSM-(1980년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 제 3차 수정본)에서부터 지금까지(2013년 제5차 수정본(DSM-)까지) 무드 장애(감정 장애)로 분류되어져 있다. 우울증은 감정 즉 기분이 다운되어 에너지 고갈, 의욕 상실, 의기소침, 두문불출, 입맛 상실, 잠만 자거나, 미래가 없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자살 생각, 죄의식에 사로 잡힘, 흥미와 취미의 상실,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으로 소금에 절여 놓은 파김치처럼 에너지 고갈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삶에서 즐거움을 상실한 심리적 패배감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정신장애 중에서 사람의 정신을 시들어가게 만드는 가장 고약한 마음의 병이다.

우울증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 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Niobe)의 돌과 같은 표정의 얼굴에서 우울증의 기원을 지적하고 있다. 14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다고 아폴로의 어머니인 니토(Nito) 앞에서 자랑을 하다가 자녀가 2명뿐인 니토(Nito) 보복으로 자녀를 모두 잃어버리고 돌로 변한 니오베의 이야기에서 그 기원을 들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의학적 기록은 B.C. 4세기 그리스의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 의해서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melancholia)를 쓸개 즙의 과다로 생긴 질병으로 진단을 하면서 의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의 연구로 평생을 보낸 하버드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봄페드(Bemporad, 1978)와 그의 스승인 펜실바니아 의과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로서 정신분열증 연구로 세계적인 명저를 남긴 정신분열증의 해석의 저자인 아르에티(Arieti)의 공동 저서인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 심리치료적 접근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심한 우울증은 생리적인 질병으로 고려했다. 1904년에 스위스의 의사로 미국에 이민을 간 미국의 정신 의학의 대가로 불리는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는 삶에서 심한 연속적인 이벤트들이 심한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았다. 생리적 원인으로 본 멜랑꼴리아에서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우울증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신체적 질병의 개념에서 정신장애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신체적인 요인으로써 보다 개인적 심리적인 요인이 우울증의 핵심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Arieti & Bemporad, 1978).

19세기 말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창설로써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프로이트의 제자인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이었던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1911년에 우울증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정신분석가들의 우울증에 대한 심층 연구가 시작되었다(Arieti & Bemporad, 1978).

불안증의 연구 때문에 뒤 늦게 연구를 시작한 우울증에 대해 프로이트가 1917년에 애도와 멜랑꼴리아”(Mourning and Melancholia)라는 심층 분석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 우울증의 심층 연구 논문은 우울증의 연구의 백미로써 100년이 지난 지금도 수 많은 학자들의 부가적인 연구로 설명을 더 붙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명쾌한 이론적인 걸작으로 남아 있다고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2005)은 극찬하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애도와 멜랑꼴리아의 차이점은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로써 외부 세계가 공허한 반면에 심한 우울증은 내면의 세계가 공허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프로이트는 강조를 한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대상의 그림자가 ego 위에 떨어졌다라고 표현을 했다. 이 경구는 우울증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을 하는 정신분석가들의 경구가 되었다.

쉽게 말해서 애도에서는 텅 빈 세계가 있다. 세상이 텅 비고 초라하고 빈약한 세상이 있다. 외부 세계가 텅 비고 초라 하지만 내면의 세계는 이상이 없다. 이것은 사랑 하는 대상(사람 혹은 물건)의 상실 이후에 애도의 기간을 거치는 정상적인 애도를 말한다. 정신 의학에서는 상실 이후에 약 2년 동안 대상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의 아픔을 거치는 자연 치유의 기간을 말한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인 멜랑꼴리아에서는 텅 비고 초라한 자아(ego)가 있다. 내가 무가치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해서 어떤 것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 자아를 욕한다. 자아가 상처 받기를, 내동댕이쳐 던져지기를 기대한다. 자해, 자학으로 자아 비판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낮춘다. 어떤 사람과 연결된 것에 대해서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자기 자신과 관계를 불쌍하게 여긴다. 고로 정신 장애 중에서 가장 자살 비율이 높은 심각한 질병으로 치료를 요구하는 중병으로 본다(Ogden, 2005).

정신분석에서는 심한 우울증 속에다 조증을 포함시킨다. 조증과 우울증은 정 반대이다. 우울증의 과도한 수면, 두문불출, 에너지 고갈, 흥미 상실, 의기소침 등과 대조적으로 조증은 잠이 없는 불면, 에너지의 홍수, 과대 과장, 이상 행동 등을 보인다. 조증은 그 기원을 우울증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분노가 억압되어져서 내면 속에서 자아로 향한 것을 우울증으로 본다. 이 우울증이 자아 밖으로 나타난 것으로 우울증에 대한 방어가 조증으로 보고 있다. 조증은 그리스어로 분노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어의 조증(mania)은 영어로 분노(wrath)라는 뜻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합쳐진 것이 조울증이다.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나타나는데 우울증의 기간이 약간 긴 것이 특징으로 보고 되고 있다(Georgaota & Cancro, 1988).

우울증은 흔히 정신장애에 감기라고 표현을 한다. 그 만큼 모든 심리적인 사건 사고 들은 그 사건의 결과가 부정적일 때 사람은 우울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Freud)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분석 이라는 현미경(은유적 표현)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하면서 인간이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것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즐거움 보다는 고통스런 감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은 제 1차 우울증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 혹은 사고들의 결과로 생기는 우울증을 제 2차 우울증으로 본다. 성폭행의 결과로 우울해진 40대 중반의 부인 A, 고교를 자퇴하고 2년 동안 개인교수를 받아서 열심히 노력했으나 수능에서 9등급을 받은 B, 7년 동안 남편의 외도를 모르고 있었던 부인 C, 연인으로부터 버림 받은 D양 등, 고교 시절에 선배들로부터 폭력의 대상이 된 E씨 등이 우울해진 것은 제 2 차 우울증으로 본다. 2차 우울증은 우울증 그 자체를 치료해서는 효과가 없다. 성폭행, 실패, 외도, 실연, 동료들의 폭행 등의 문제를 다루고 극복하게 될 때 우울증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우울증을 약물로써 치료하지 않는다. 약물의 치료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정신 장애에서 사람들이 약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위기적 상황 즉 기절, 졸도, 어지러움, 현기증, 심장마비 등의 공포적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한다고 토로 한다. 그러나 약물은 부작용뿐만 아니고 급박한 순간을 차단시키기 때문에 그 증세의 근본 뿌리를 드러나게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고로 정신과적인 약물은 증세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증세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정신분석에서는 약물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붙여서 약물은 증세를 완화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자아의 취약점 자체를 수리해주지 못한다. 그 환자는 그 증세가 드러나기 이전에 이미 자아의 취약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자신감 결여, 의사 소통 결함, 감정 표현의 미성숙함, 갈등 해결의 회피 등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촉진 요인들에 의해서 증세가 표면화 된 것이다. 고로 그 촉진 요인들을 찾아내고 그 자극들에 대처해 나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자아의 결함을 수정 하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그래야 이후에 그 환자는 이전의 상처와 유사한 문제들을 피하지 않게 되고 혼자서 직면으로 뚫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즉 자아의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핵심이다.

아래의 우울증의 치료 사례들은 어떻게 우울증을 치료 하는가? 하는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우울증을 제거해 나가는 치료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들을 자아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지 않는가?

 

아무 것도 하기 싫어요

대상: 31세의 미혼의 여성 S

증세: 불면증, 우울증으로 두문불출로 5개월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고 울고만 있음

접촉: 신경 정신과에서 3개월간 약물 치료를 받다가 효과가 없어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치료자의 홈페이지에서 전화 번호를 알고 치료자에게 직접 전화로 연결해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함

진단명: 심한 우울증, 회피적 성격장애, 숫자 강박사고

치료 기간: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심리치료만 사용해서 첫 2개월은 1주일에 2회씩 1회에 2시간 분석 상담을 받았고 나머지는 1주일에 1회씩 2시간 분석 상담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치료 시작 3개월 만에 우울증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고 이후부터는 자아의 결함을 수정해 나고 있음

치료의 과정

S양은 치료자에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전화로 시간 약속을 했다. 인터뷰 시간 30분 전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코란도 승용차 안에서 오늘 약속 시간에 부모님을 동반하기로 했다고 연락이 S양으로부터 왔다. 31세의 미혼녀로서 아직도 부모님의 그늘 안에서 과잉보호를 받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치료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어했고 치료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을 분석해 가면서 치료자는 S양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처벌이나 학대, 방치와 같은 심리적인 상처는 없으나 출생 직후에 신체적으로 목 부분이 약간 불균형이어서 4살 때 병원에서 교정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지막으로 교정 수술을 받아서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4살 때 신체 부분에 교정 수술은 S양이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부모님은 꽃 농원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써 S양은 대학을 졸업 후에 부모님의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친지의 소개로 1 6개월간 속독 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한 적이 있으며 속독 학원이 잘 운영되지 않아서 신참을 해고 시키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 자신도 그만 두려던 참에 잘 되었다 싶어서 원장에게 이야기해서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농장이 잘 되었기 때문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빠서 S양은 업고 일을 하거나 엄마가 일하는 옆에 S양을 놀 게 하여 큰 어려움이 없이 키웠다고 하는 말을 엄마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의 일에 바빠서 S양을 그냥 방치해서 혼자서 놀 게 했고 이것이 이후에 대인관계와 친밀 관계에 영향을 미친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문제의 시작: S양은 자신은 우울증이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초등학교는 별 어려움이 없이 성적을 상위권에 있었고 중학교 3년 동안은 S양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전성기였다고 했다. 공부를 반에서 2-3등으로 선생님들과 동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부반장, 총무 등의 학급 일을 맡아서 관계도 좋았다고 했다.

S양이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자신의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책 읽기는 좋아했으나 감상문을 쓰는 것을 어떻게 쓸 줄 몰라서 전전긍긍했고 영어에 듣기를 잘못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학년에 올라갈수록 쌓이는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누적이 되어 결국은 3학년 2학기 9, 10월 달을 우울증으로 밤마다 울면서 죽고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고 했다.

스카프로 목을 감았다고 풀었다가 하면서 죽는 시늉을 냈어 보았으나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힘들어서 늘 잠자리에 들면 "왜 글자는 "" ""가 모여서 ""가 되고 왜 2 + 2 = 4가 되는지 왜 2 X 3 = 6이 되는지 등에 끝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헤매다 끝내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물론 이런 우울함은 부모님에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2개월-3개월 후에 우울증은 그대로 지나갔고 고등학교로 올라갔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는 중간 정도에서 머물 게 되었고 그냥 평범한 아이로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했다고 했다.

대학은 별로 가고 싶지 않는 학과인 물리학과에 진학을 했고 대학생활도 서클 활동도 별로 없이 4년을 보냈으나 대학 3학년 때 우울증이 두 번째로 등장해서 약 1주일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자 남자 친구와 동료 여자 친구들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학교에 오지 않고 연락도 없이 왜 그렇게 두문불출하느냐고 권유하는 바람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S양의 부모님은 S양의 우울한 상황을 상세히 알지 못했고 그냥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하루 종일 누워서 보내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졸업을 하고 부모님의 농원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1 6개월간 속독 학원에서 초, 중등 학생들을 상대로 속독으로 책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다가 별로 흥미가 없어서 그만 두고 부모님의 농장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된지 3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친지의 권유로 맞선을 보게 되었다.

 남자 쪽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사귀자는 요구에 S양은 상대 쪽 남자의 남동생은 이미 결혼을 해서 자녀가 있고 남동생의 부인은 교사로써 만약 S양이 이 남자와 결혼을 하면 손 아래 동서가 교사로써 자신보다 능력이 한 수 위라는 생각에 대응해 나갈 수가 없이 불안해졌고 남자와 어떻게 사귀는 줄로 몰라서 그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고 난 후에 3개월 동안 우울증으로 두문불출하게 되어 3번째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3개월 후에 다시 회복되어 잘 지내다가 2005 8월 달부터 다시 우울증에 빠지게 되면서 이번에는 심한 우울증으로 농장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틀어 박혀서 두문불출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고 계속해서 눈물만 흘리고 부모님의 전화도 받지 않고 무응답으로 반응하자 부모님이 놀래서 신경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든지 아니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고 다그치자 할 수 없이 신경 정신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우울증이라고 이야기를 하자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은 뇌의 질병"이니 약물을 복용하라고 해서 약을 먹다가 효과가 없어 그만 두고 다른 큰 병원의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S양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고 있네!" 라고 빈정거리는 말에 당장 그만두고 다른 신경 정신과 의사에게 갔으나 역시 약물로 치료를 받으라는 말에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3개월의 시간만 흘러갔고 더 이상 우울증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S양이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심리치료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고 전화로 심리치료를 요청했고 시간 약속을 받아서 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론적 근거: S양은 치료자와 전화로 몇 분 동안 시간 약속에 대한 이야기와 치료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날 저녁에는 불면증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아오던 것에서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고 했다. 치료자와 전화 통화에서 치료자의 자신감에 넘치는 말에 안정을 얻을 수 있었고 우울증에 대한 심리적인 것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치료를 받아서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치료 초기부터 치료자와 S양은 공감대가 잘 형성되어 비교적 3개월이라는 빠른 시간에 우울증의 증세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S양의 핵심 문제는 부모님의 학대나 처벌이나 방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핵심은 어머니가 S양의 유아기에 너무 바빠서 같이 놀아주지 못한 것 즉 공감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 것과 동료들과 어울리게 해 주지 못하고 엄마의 일터에서 혼자 놀게 만든 것 그리고 엄마 자신이 충분한 대화로써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한 것 등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더 큰 핵심은 S양이 출생 시에 신체적으로 약간 목이 불균형으로 4살 때 교정 수술을 받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지막으로 큰 교정 수술을 받을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분석되었다.

S양은 유치원 때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자신의 자아 표현이 적어서 동료들로부터 뚱뚱이 혹은 삐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몸이 약간 살이 찐 것을 동료들이 뚱뚱이로 놀렸고 고개가 약간 옆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삐뚤이라고 놀림을 받아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에 우울한 부정적 사고 방식이 초등학교 입학 후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자 거울을 쳐다보고 "나는 왜 삐뚤이로 태어났을까?"라고 한탄을 많이 했으며 종종 자신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기형적인 아이라는 생각이 5학년 때까지 계속되어 S양의 자아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드러났다.

유아들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신체 감각으로부터 자아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고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말했다. 신체 이미지 즉 body images가 자아 이미지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S양은 자신의 신체 이미지가 기형적이고 비 정상적이라는 이미지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약 8년 동안 계속되면서 자아 이미지를 왜곡 시킨 것이었다.

언제부터 자신의 신체가 기형이라고 느끼게 되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유치원 때인 3살 때 4살 때에 동료로부터 뚱뚱이라고 놀림을 받으면서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4살 때 큰 수술을 받았으나 S양은 기억을 하지 못했고 부모님으로 들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몸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늘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했다.

문제 해결 과정Ⅰ: S양의 신체 이미지의 왜곡에서 부정적 사고 방식이 나왔다는 것이 분석되면서 S양의 부정적 사고 방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먼저 중학교 때의 첫 우울증의 발생 시기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S양은 늘 저녁 때가 되면 밤에 잠들기 전에 눈물이 나면서 "" ""는 왜 ""라는 글자가 되는가? 2 + 2 = 4가 되는가?라는 끝도 없는 질문 속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이것을 분석해 보면 S양은 어린 시절부터 약 8년간 신체 이미지의 기형 때문에 고민을 해왔으나 정작 신체 이미지는 의사 선생님이 5학년 때 마지막으로 교정을 해주기 전까지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으로 불가능한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S양의 문제는 영어의 듣기와 국어의 읽기 독해력 등이 문제로 떠 올랐으나 S양은 이 문제를 하나씩 정면으로 풀어가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쌓여서 불가능한 해결 방법 즉 왜 ""라는 글자는 "" ""가 붙어서 만들어지나, 2+2=4가 되느냐 등의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영어 듣기를 어떻게 해결할까 매일 같이 영어 테이프를 계속해서 듣는다든지 국어 독해력을 높이려는 어떻게 할까? 생각해서 동화책을 많이 읽는다든지 하는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없고 불가능한 생각에 빠지게 된 것은 신체 이미지의 불가능한 해결에서 온 것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이 되지 않고 고등학교로 가지고 가는 바람에 S양의 재능은 그대로 사장되고 만 것이었다. 결국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평범한 아이로 전략해 버렸고 자신에게 실망이 결국 자아 처벌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치료에서는 이것을 S양이 깨달아서 알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불가능한 사고 방식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알 게 되면서 생각을 바꾸는 훈련을 함께 받게 되었다.

문제 해결 과정 Ⅱ: 두 번째 자신의 문제를 노출 시키고 정직하게 대화를 하는 과정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우울증에서 3개월 만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S양의 과거 역사를 보면 자신의 문제점을 한번도 부모님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늘 자신의 마음 속에 담아두고 혼자서 끙끙 앓아왔고 문제도 해결 쪽으로 간 것이 아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이상한 생각에 빠지게 되어 문제 해결은 하나도 되지 않아 그것이 쌓여 더 큰 문제를 만들어냈음을 S양이 알 게 되었다.

먼저 친구들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울한 상황이나 평소에 친구들과 접촉이 별로 없고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린 것이 드러났고 이것은 친구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나가는지를 모르는 데서 온 것임을 S양 자신도 인정을 했다.

치료자와 끝없는 대화 속에서 S양은 대화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치료 시간에 직접 대화의 기술을 가르침을 받았다. 과거의 동료들과의 갈등 이벤트들을 재연 시켜서 치료자가 그 때 어떻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는 것을 직접 경험으로 몸소 느끼게 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문제점을 숨겨온 것이 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임을 알 게 되었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정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매 주일마다 S양은 과거에 끊어진 동료들과 전화를 새로 연결해서 지금까지 약 5개월 동안 우울증으로 시달려왔고 지금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게 되면서 동료들로부터 그들 자신들도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면서 자신만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지 않음을 알 게 되었다. 동료들도 대부분이 삶에서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되면서 적극적인 관계 태도를 개발하게 되었다.

매주 마다 동료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어났고 만나서 2시간-3시간 장황하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갔다. 그 결과 치료 시작 3개월 정도 되면서 태도가 이렇게 바뀌면서 불면증이나 우울함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수가 있게 되었다.

문제 해결 과정 Ⅲ: S양의 우울증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작임을 S양이 알도록 했다. 이제 우울증의 증세에서 빠져 나왔을 뿐 정작 부정적 사고 방식이나 문제를 뚫고 나가는 방식, 미래에 대한 설계, 취미 생활, 결혼 생활 등을 앞으로 다루어서 그 문제를 뚫고 나가야 우울증이 완전히 해결된다는 것을 S양도 깨닫게 되었고 지금은 치료 초반기 보다 더욱 열심히 치료자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실제 생활에서 이것을 적용해 나가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자신감이 증가되어 가면서 매사에 적극적이 되어가고 있고 친지나 동료들로부터 과거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칭찬을 듣는 것에서 즐거움이 배가 되어가고 있다. 치료 6개월이 지나가면서 S양은 자신이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운전을 하지 않아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농원을 하는데 놀고 있는 차량이 2대나 있지만 어머니나 S양 자신은 정작 운전을 하지 못해서 늘 아버지가 직접 꽃 모종이나 꽃 화분이나 재료 등을 구입할 때 자동차로 일일이 태워다 주고 데려다 주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고 도로 운전을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문제 해결에 어떻게 접근하는가를 배우려고 하고 있다.

도로 운전 연수를 무사히 끝내고 마음대로 차를 몰로 씽씽 신나게 달리는 꿈에 부풀어서 지금은 열심히 치료와 운전 연습을 병행하고 있다.

치료 종결: S양은 우울증 증세는 해결이 되었으나 이것이 우울증의 치료가 완료된 것이 아니고 앞으로 몇 년은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핵심 문제는 우울증이 아니고 우울증의 뿌리가 되는 문제 해결 능력의 결함, 부정적 사고 방식, 미래에 대한 비전과 설계가 없고 취미나 대인관계의 기술 부족이라는 것을 잘 알 게 되었다. 치료 6개월 째 대인관계 기술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나 나머지 문제가 해결되려면 아직도 몇 년의 치료 기간이 필요할 것임을 S양 자신이 깨닫게 된 것이다.

 

 의사소통의 문제로 결혼 3년 만에 자살 소동을 벌린 30대 초반의 부인

 

대상: 의과 대학을 졸업한 33세의 결혼 3년째인 부인 B

증세: 우울증, 불안으로 마음의 안정이 상실

접촉: 인터넷으로 치료자의 우울증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심리치료를 요청

진단: 우울증, 대인관계의 어려움, 의사 소통 결함, 불안증

치료 기간: 1회 치료 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2회기로 2개월 그리고 나머지는 1주일에 1회기로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우울증 문제는 어느 정도 회복 되어 풀 타임 직장을 구해서 일을 하게 되었고 남편과의 의사 소통도 부인 B씨의 힘겨운 노력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성격 문제의 치료가 필요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치료를 받으러 나올 시간이 없어서 치료 종결 1달을 남겨 놓고 치료가 중단 되어있음

치료의 과정

부인 B씨는 결혼을 한지 3년째로 남편은 치과 의사로 2살 된 아들이 있는 세상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부 의사였다. 외형적으로는 전문가 부부로써 남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행복한 커플로 우리나라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커플 부부였다.

그러나 부인 B씨는 결혼 초반기부터 남편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음을 느꼈다. 두 사람은 법학 분야의 전문가 집단을 위한 대학원 과정인 명문 xxx 대학 법무 대학원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고 남편은 그 당시에 군복무 중에 있었다. 그는 군의관으로 지역 보건 담당 치과 의사로 병역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부인 B씨는 아버지가 고급 공무원이었고 최근에 명퇴를 해서 조그만 사업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결혼 후에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직장을 그만 두고 전업 주부로 있는 어머니 그리고 최근에 결혼한 남동생을 두고 있었다.

남편 J 씨의 가족으로써는 J씨의 아버지는 공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 준장으로 예편한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서울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전업 주부였고 그리고 의사와 결혼을 했으나 최근에 이혼을 한 누나가 한 명 있었다. 서울의 강남에서 중, 상류층으로 강남의 일류 학교를 졸업한 축복 받은 가정에서 자라난 그들의 결혼에서도 문제점은 있었다.

결혼 직후에 부인 B씨는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음을 느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섹스 문제가 걸림돌로 떠 올랐다. 부인 B씨의 말에 의하면 신혼 기간에 해당되는 결혼 3년 만에 섹스를 가진 빈도수가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불평을 했다. 그녀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제를 시부모님에게 알렸다.

남편이 섹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로 한 것이었다. 시부모님이 부라부라 달려왔고 남편은 서울 강남에 있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부부가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정신과 의사는 부인도 정신과 의사로써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난 부부 정신과 의사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섹스 문제는 단순한 섹스 관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성격에 관계된 의사 소통에 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1달 가량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실망해서 그만 두게 되었다.

부인 B씨는 인터넷으로 광고된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로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의사에게 카우치에 누워서 하는 정신분석 치료를 한번 받아보았으나 불만족해서 치료자를 찾아와서 심리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부인 B씨의 어린 시절의 역사: 부인 B씨는 어린 시절의 희미만 기억이 있었다. 유치원 때 큰 문제는 없었으나 명절 때 친가에 가면 친척 형제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늘 책을 읽었던 기억들을 떠 올렸다.

그녀는 큰 아버지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지금은 명문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서 큰집 자녀들인 사촌 형제들과 항상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항상 큰 집의 손자 손녀들만 특히 귀여워했다고 회상을 했다. 그녀는 특히 좌지우지하는 할머니를 싫어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심한 시집살이 때문에 더욱 분노했다. 결혼 직전에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큰 아버지의 미국 유학으로 가족의 경제적 책임을 아버지가 떠 맡았던 바람에 어머니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 되었고 어머니는 부인 B씨를 출산 후에 며칠 산후 조리를 하지도 못하고 직장에 나갔던 일 때문에 어머니 역시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를 보호해주지 못한 아버지, 결혼 직후 독립된 살림을 하다가 장남의 미국 유학으로 부모임을 모시기 위해서 B양의 어머니(아버지의 부인)와 의논 없이 부모님 집으로 강압적으로 들어간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대단했다. 어머니는 부인 B씨가 태어난 3년 후에 남동생의 출산으로 간호사를 그만두고 어머니가 임산부들의 출산을 도와주는 의료 사업을 집에서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린 시절의 부인 B씨와의 관계는 늘 다가가기 어려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명문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재원이었으나 수재였던 큰 아버지의 재능에 눌려서 크게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고 회상을 했다. 직장 생활에서 여유가 있으면 늘 집안의 일을 손질했던 아버지의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어린 시절의 오디프스의 기간에 딸과 아버지의 친밀관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늘 접근하기 어려운 아버지의 이미지였다. , 중등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공부에 우등생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시기에 학급에서 인기 있는 남학생을 좋아했으나 이러한 것을 눈치챈 어머니의 심한 질책에 좋아한다는 말도 한마디 못하고 마음 속에서 억압하고 지나갔다.

또 어머니에게 공부 방을 꾸며 달라고, 필요한 책상을 사 달라고 졸랐으나 어머니는 딸의 이야기를 제대로 수용해주지 않았다. 항상 돈이 부족하다, 살림이 쪼들린다 라고 대답을 했다. 아버지는 딸의 요청에 딸의 의견은 무시하고 아버지의 취향에 맞는 책상을 사준 것도 불만이었다.

의대에 진학한 후에 아버지는 딸의 승용차를 딸의 의견을 무시하고 아버지의 생각대로 사준 것에 불만이 많았다. 부인 B씨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복종적인 착한 소녀였다. 특히 할머니의 권위적인 태도, 아버지의 지시적인 군림적인 남성우월주의에 분노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이미 여성 해방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권위적인 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분노, 미움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인 B에게 공감적이지 못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많은 책들을 읽었고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5년간 피아노를 배웠고 친가에 갔을 때 막내 고모가 부인 B의 피아노 연주 솜씨를 보고 감탄하며 음악을 전공하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도 있었으나 어머니는 음대에 가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이러한 음악에 대한 재능은 그녀가 의과 대학에 다닐 때 음악 클럽을 만들어서 아마추어 솜씨 이상을 발휘해서 동료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것에도 잘 나타나있었다. 그녀는 초, 중학교 때는 늘 모범생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온순하고 착한 소녀로 부모님에게 순종적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델 소녀로 자라났다. 문제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홍콩 지사로 근무를 하게 되면서 가족이 홍콩으로 이사를 가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홍콩에서 외국인 학교에 들어가서 외국인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부인 B씨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이 영국계의 학생들이었고 가끔 부유층 인도인의 자녀들이 있었다. 그녀는 외국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열등감 속에 살았다. 공부는 영국 학교의 전통을 따라서 엄격하고 과제물이 많았다. 점점 학교 생활에 적응이 어려워가면서 그녀는 외톨이가 되어감을 느꼈다. 외국인 학급 동료들의 거침없는 자기 주장에 온순하고 동양적인 미덕으로 자라난 사춘기 소녀에게는 이러한 동양적인 온순함과 복종적인 자세는 걸림돌이 되었다.

자신을 낮추고 어른들의 말에 잘 따르고 어른들을 공경해야 하는 동양적인 삶의 방식은 외국인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는 동양인에게는 자심감이 없는 소녀로 비치게 되어 더욱 대인관계에서 힘들어지게 되었다. 홍콩에서 2년 정도 머무는 이 기간이 그녀에게는 최악의 고통스러운 기간이었고 삶에서 가장 불행한 기간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녀는 이러한 어려움, 갈등들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마음 속에서 참고 살았다.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한 친구가 없었다. 모두가 영국인 자녀들이었고 인도인의 자녀들은 부유층으로 영국식으로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학생들이어서 같은 동양인이었지만 그녀와는 소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 한 학기를 스스로 자퇴를 해서 집에서 독학을 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실은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동생은 잘 적응을 해 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홍콩의 외국인 학교에서 생활이 즐거워 보였다.

한국으로 귀환해서 다시 여고에 편입을 했다. 대학 입시가 눈 앞에 보이고 경쟁이 치열하게 되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고3 생활은 그런대로 극복을 하고 외국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특례 입학으로 무난히 명문 xxx 의과 대학에 들어갔다.

 그녀는 의대에서 공부를 할 때 늘 입버릇처럼 "나는 의사가 될 사람이 아니다. 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 나는 다른 직업으로 전업을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그녀는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여성은 자신처럼 전업 주부로 늙을 것이 아니고 전문가의 직업을 평생 도록 가져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된 생활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해 온 것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의과대학에 가게 되었다고 회고를 했다.

의대에서 생활을 힘들었지만 그런대로 음악 서클 활동 등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고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의사가 되었고 의사라는 직업에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 다시 법학을 공부해서 법대 교수나 의료 사고 등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명문 xxx 대학 법무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과정을 밟게 되면서 그 곳에 한 학기 공부를 하러 온 남편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론적 근거

부인 B씨는 어린 시절에 너무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에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친밀관계가 거의 없었고 어머니와도 공감적인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나 고통을 부모님에게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친구나 동료들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항상 자신의 결점들을 숨기고 혼자서 참고 살아온 것이었다. 친밀하게 온갖 내면의 이야기들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한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면을 틀어놓은 여자 친구가 한 명 정도 있었으나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로 소원해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녀는 항상 어머니의 눈치를 보고 자랐다. 어머니는 항상 경제적으로 쪼들린다고 불평을 하면서 살았다. 분석의 과정에서 그녀는 어머니의 감정 표현을 닮아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하지 못해서 항상 아버지의 의사에 끌려 다녔고 제대로 어머니 자신의 감정을 남편에게 의사 소통을 하지 못한 것이 분석되었다.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태도가 몸에 베인 사람이 어머니였다. 절대로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내면 속에 억압하고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 때문에 어머니는 남편에게 시집살이를 할 때 받은 분노를 아직도 가슴 깊이 쌓아놓고 있다고 했다.

나이 많아 지면서 어머니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고 늘 집에서 갇혀서 부인 B씨의 아들을 출생 후부터 주로 양육을 해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최근에 우울함을 자주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에 대한 분노를 부인 B씨에게 틀어놓게 되었다고 했다. 부인 B씨와 어머니 사이에 제대로 된 의사 소통이 부인 B씨의 결혼 이후에 최근에 와서야 이제 제대로 된 의사 소통이 되어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부인 B씨는 자신의 결혼 문제를 어머니에게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어머니 역사 과거의 남편에 대한 분노, 적대 감정을 내면의 억압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분노, 적대감정이 엄청났다. 그녀는 많은 책들을 읽었고 이러한 다양한 경험 때문에 심리적인 문제에서도 보통 사람들과 달라서 자신의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한창 주식투자 붐이 일 때 자신의 연금을 담보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약 5억 원 정도를 날리고 결국은 자신의 양옥집을 처분하고 서울의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에 엄청나게 실망하고 분노했다. 어머니 역시 이러한 점에 분노했다. 주식 투자 때 부인에게 한마디로 의논하지 않고 제멋대로 했던 남편에 대한 적대 감정이었다.

부인 B씨는 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경제적인 이유를 들먹이면서 자신의 소망을 묵살했던 기억을 떠 올리면서 분노했다. 그렇게 절약적이고 저축을 해서 자녀들의 소망을 무시하고 돈을 모았던 것이 제대로 한번도 써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날려 버린 것에 대한 분노와 노여움이었다.

 부인 B씨는 최근에 어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에 들었던 기억을 떠 올렸다. 어머니가 부인 B씨를 출산 후에 산후 휴가를 가지지 못하고 출산 직후에 직장에 근무를 했고 부인 B씨는 어머니가 직접 양육을 한 것이 아니고 어린 시절에 가정부 겸에 나이 많은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부인 B씨를 양육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이것이 사실인지를 직접 확신을 하려고 시도를 했으나 어머니가 부인 B씨의 아들을 양육을 해주고 있고 또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 그것이 2살 된 아들에게 감정의 영향력이 흘러갈까 고려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남동생은 태어난 직후부터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양육을 해서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해서 대인관계가 활발하고 좋았다고 했다. 남동생은 명문 대학은 아니지만 경제학을 전공해서 지금은 우리 나라의 최고 기업인 xx회사에 입사했고 인사부에 근무해서 결혼해서 분가해서 살고 있고 남동생은 자신의 부인과 의사 소통이 잘 되어 결혼 후에 부인 B씨의 부부와 비교를 해 볼 때 부인 B씨의 의사 소통을 출생 후에 0 -3세까지의 양육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문제 해결 과정

부인 B씨는 내면 속에 억압되어있는 분노, 적대 감정이 방향이 바뀌어서 남편에게로 대인관계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어린 시절부터 쌓인 분노 이 분노는 어린 시절에 손녀를 예뻐해 주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될 간호사인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혼 시에 혼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 후에 며느리를 박대했고 기독교인 할머니와는 달리 기독교에서 개종해서 어머니의 종교인 캐토릭으로 바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인 부인 B씨를 할머니가 예뻐해 주지 않았다는 어린 시절의 할머니의 사랑이 결여된 것에 기인된 것이었다,

평생 동안 돈을 아끼면서 살아왔고 외국 유학을 간 형님 대신에 친가 부모를 봉양하다 독립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벗어 났지만 주식으로 연금을 날리고 어린 시절부터 살아왔던 정이 든 양옥 주택을 날리고 만연에 퇴직 후에 경제적으로 초라한 아버지에 대한 적대 감정, 그리고 자신감이 없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많은 남편에 대한 분노가 유사한 맥락을 이루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부인 B 씨는 어린 시절의 자신의 부모와 관계가 결혼 후에 부부 사이에서 문제로 재연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선택한 남편이 권위적인 아버지를 싫어하는 그녀의 내면의 욕구에서 선택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부인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모든 것을 부인 B씨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좋아서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주장을 하고 자신의 분노를 마음대로 표현해 주도록 허용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부모와 관계가 바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모와 관계를 싫어해서 반대행동 형성으로 나타난 방어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결혼 전에는 그녀는 남편을 이상적인 배우자로 보게 된 것이었다. 외면적으로 보면 문제의 해결처럼 보이지만 문제를 거꾸로 한 것일 뿐 문제 해결은 아니라는 것을 결혼 후에 부부 갈등이 재연되면서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부인은 자신이 남편에게 남편의 권위적인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남편의 어머니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이고 아들의 의사보다 어머니의 자신의 의사대로 밀고 나간 사람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치과 의사 직업이 어머니의 선택이었지 자신의 의사 결정이 아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남편의 누나는 대학 졸업 후에 의사인 남편과 결혼을 했으나 결국은 얼마 전에 서로 이혼을 한 사실은 시어머니가 자녀들의 문제 간섭해서 시어머니의 의도대로 만들어낸 결혼 임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싫어하면서도 결국은 부인으로 선택한 B부인이 일일이 일상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간섭하고 명령적인 어머니를 닮아 있어서 남편의 어머니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 분노가 부인 B에게로 흘러가서 이것을 말로써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남편 자신도 법학을 공부해서 변호사나 법관이 되고 싶어서 명문 법대 대학원에 등록을 했다고 했다. 부인 B씨는 의사라는 직업보다 법관을 꿈꾸면서 법학 박사 과정에 등록을 하고 아울러 고시 공부를 병행해서 사법 고시 시험을 앞두고 6개월의 치료 기간이 끝나면서 치료를 지속하지 않고 잠깐 중단했다. 사법 시험이 끝나고 다시 6개월의 치료를 재개 하면서 치료자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부인 B씨의 내면의 문제점과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해가 빠를 것으로 보고 그녀가 치료자에게 보낸 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보낸날짜

: 2008 5 06일 화요일, 오전 06 54 07 +0900

보낸이

"

받는이

"김종만" < jongmankim@hanmail.net>

 

안녕하세요. 작년 여름 경에 치료를 받았던 xxx 이라고 합니다. 혹시 기억하실런지요? 9월초에 제가 아마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 갔었어요. 사시 모의고사가 9월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실전이라는 생각에 초조하기도 했고, 하필 그 당시 경제적 압박도 심했어요. 당시 남편이 7월말에 일터를 옮기고 몇 달 동안 집에 거의 돈을 가져오지 못해서 매우 힘들었습니다. 아마 공부 초조감과 시간에 대한 압박감(60%) 경제적 이유(30%) 그리고 무언가 치료에서 꼬리를 빼고 싶은 마음도 약간은 있었던 것 같은데 심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뭏든 치료를 자의적으로 쉬고 9월 달부터 12월까지는 문제없이 공부하면서 정말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12월 말쯤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둘째를 가지게 되어 시험을 접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1, 2월에 체중이 엄청나게 불어 몸이 상해 두 달을 그냥 날렸고...결국 안되었죠. 그래서 1년만 더 하고 안되면 깨끗이 접자 생각하고, 출산 때문에 2년간 휴학했던 대학원(법대 박사과정)에 복학했어요.

지금은 그래서 대학원 다니면서 여전히 전업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고요...늘어난 체중 때문에 몸이 너무 아파 비만 클리닉의 도움을 받아, 시험이 끝나자 마자 독하게(?) 살을 뺐습니다. 두 달 동안 12kg를 뺐고, 지금은 결혼 전 체중으로 돌아왔어요. 제 컴플렉스가 몸에 집중되어 있다는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정말 살을 빼면은 내 문제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해결이 될수 있겠다는 집념으로 버티었지요. 정말 살이 빠지니 삶이 달라지더군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좀 생기는 것 같고....이건 제게 일어난 좋은 변화이긴 한데, 제가 느낀 건 몸이 예전으로 돌아왔지만, 내가 나 자신을 보는 눈은 크게 바뀌지 않는구나...였어요. 제게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제 자신이 많이 느끼고 있으니까요. 제가 알고 느끼는 문제, 그리고 생각하기조차 싫어 묻어두는 문제...

결정적인 것은 남편과의 문제입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고, 부부 사이가 자꾸만 나빠집니다. 악화될 망정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남편에 대한 제 마음을 저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 안에 남편에 대한 이유 모를 적대감을 느낍니다. 남편이 이유 없이 너무도 밉고, 처벌하고 싶고, 응징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입니다. 그 증오가 너무도 커서 죄책감도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증오가 정당할 만큼 악한 사람은 절대 아니기에, 제 적대감은 무언가 비이성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내가 그 적대감과 비슷한 정도로 미워하는 누군가가 또 있는가 생각해 보았더니 딱 한 사람, 아버지가 있더군요. 직접적인 연관고리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부모에 대한 증오가 배우자에게 전이된다고 하잖아요...그래서 느껴지지는 않지만, 제가 그 케이스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제가 제 무의식을 알 수 없으니....

혹은 제 자신에 대한 증오심, 저를 파괴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본능이 남편에게 간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 틈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남편을 보고 느낀 제 첫 인상은 "또 다른 (상처받은) 내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였거든요. 그러면서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지만, 서로의 무의식이 끌어 당긴 것인지 결혼까지 오게 되었네요. 하지만 결혼 전 불안하게 짐작했던 대로, 서로 자꾸만 상처를 주게 되네요. 저는 어쩌면 이를 알면서도 나라는 존재는 처벌받아야 하고 학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상처가 많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결혼 속으로 저를 밀어 넣은 것 같기도 하고.....하지만 외적으로 사람이 행복 하려고 결혼을 하지, 불행 하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한꺼풀 만 벗기면 느껴지는 저의 내면의 동기를 자꾸만 생각하면 괴롭고, 남편이 싫어지고(어쩌면 제가 싫어하는 제 면모를 남편에게서 보기 때문에 더 싫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남편은 관계를 맺는데 서툰 사람입니다. 방어막 속에 자기를 감추고 사는, 대인관계에 서툰 사람입니다. 부부가 정신적 유대도 있어야 하는데, 연애시절부터 저는 남편과 있으면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 답답한 기분을 늘 느껴 왔습니다. 결혼 전에는 이런 것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지라, 결혼하면 좋아지겠지 했지만, 오히려 남편과의 관계는 늘 겉돌았고, 관계형성이 되지 않아 너무너무 괴로웠습니다. 물론 저 역시 친밀한 관계 형성에 서툰 사람이라 그 절반의 원인이 되었겠지요?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남편은, 초기 유아기 때 기본적 신뢰감이 형성이 안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저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남편에게 이끌린 것이겠지요? 인정하긴 싫지만...)  아마도 생일이 거의 1년 차이 나는 연년생 시누이가 유난히 까탈스러워 아기 때 손이 많이 갔다는 것으로 보아 순한 아이였던 남편이 유아기 때 방치되었던 게 아닐까 짐작을 해 봅니다.(그러면서도, 교육학을 전공해서 이런 것을 모를리가 없는 시어머니가 왜 그랬을까는 의문으로 많이 남네요.).

그러면서, 또 대조적으로 무언가 묘하게 엄마와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편이 말하는 것을 잘 들어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원했음 직한 것"을 전제로 이야기한다는 뉘앙스가 많이 풍깁니다. 그 나이에 xx 대도 아니고, xx 라는 명문대를 졸업한 자기 엄마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을 완전히 신뢰해주었고(실제로 시어머니가 저랑 결혼을 허락한 이유도 '나는 우리 아들을 믿으니 아들이 고른 여자도 믿는다' 한마디였죠), 싫어하는 학원은 절대로 안 보냈고, 통도 크고 여장부이고, 인테리 이고 해서 쫌생이 같은 아버지와는 대조적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들었죠....물론 시어머니가 좋은 점은 많은 분이지만, 문제는 남편이 아직도 정신적으로 시어머니에게 매여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엄마의 대체물에 불과하고요....

선생님 홈페이지에 쓰여 있는 케이스를 보면서 얼마나 무릎을 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자꾸 사실이 되네요. 갈수록 질식할 것만 같아요. 남편과 같이 있는 것이 너무너무 힘듭니다. 어제가 결혼 기념일이었는데, 속으로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얼마나 참았는지 모릅니다. '난 당신 엄마 노릇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하지만 단지 느낌으로만 존재하고, 구체적인 증거나, 사례나 이런 것을 대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해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할 남편에게 말한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그때부터 쌓인 제 분노는, 이상하게 남편의 운전 습관에 대한 짜증으로 어찌어찌 이어져, 결국 차를 팔아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대형 부부싸움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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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썼는데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네요. 저도 머리가 넘 복잡해져서....

1. 남편에 대한 적대감의 정체

제 안에는 남편에 대한 정체 모를, 적대감 혹은 증오가 있고, 이 때문에 남편이 자꾸만 보기 싫어지고, 미워지고, 남편이 잘해주면 더 싫어지는.....이상한 감정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잘해주려고 하는 건 알지만 난 당신이 근본적으로 싫어......(그런데 싫은데 왜 결혼했지? 그래서 내가 더 미워). 그래서 남편을 학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부부 사이가 악화되는 제 측의 가장 큰 요인인 것 같고요. 근데 이게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미치겠습니다.

2. 박탈당한 유년기를 가진 부부가 과연 행복할까..

(인정하긴 싫지만) 남편과 저의 공통점은 애착 형성을 잘 못한 유년기라고 생각합니다.....결과적으로 둘이 만나서 더 악순환이 된다는 느낌이 자꾸 들고요..정도의 차이는 있는데 둘 다 친밀한 관계형성을 못해요. 그리고 전 대인 관계에서 불신은 남편만큼 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편은 누구든지 일단 불신하고, 나쁜 사람으로 모는 것에서 시작하죠. 전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 과연 이런 상태에서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이 많이 듭니다.

3. 엄마 역할을 하는 아내

2번과 관련해서......남편은 애착 형성 정도는 낮지만, 반면에 시어머니와는 정신적으로 아주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제가 느낀 대로라면, 남편은 자기 뜻, 자기 의지, 자기 자아가 없어요. 반면에 시어머니는 그에게 절대자입니다. 숭배의 대상이지요...그리고 신혼 때부터 느끼던....나는 시어머니의 대체물이구나 하는 느낌....부부관계에서도 그렇고....그래서 섹스리스인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엔 제가 시키는 대로 다 하니까 좋았는데, 갈수록 이게 아니구나 싶더군요. 질식할 것 같습니다. 저 혼자 모든 짐을 다 지는 것 같고, 어깨가 너무 무거워요. 그냥 이유 없이 답답하고, 듬직함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어린애 짓을 제 앞에서 하고 있으니....내가 뭘까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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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쓴 이유들 중 뭐가 진짜 문제인지는 모르겠구요. 그냥 토막토막 생각나는 중요한 문제들은 이러한데 원인이 뭘까 그런 의구심도 많이 들고요. 무엇보다 제가 그냥 너무 힘들어서요. 아이에게 명품 교육이나 유학보다 행복한 부모 모습이 더 큰 자산일 텐데, 부모 상처가 애에게 대물림 될것 같은 두려움도 들고요

다행히 작년 같은 우울증은 지금은 없습니다. 작년엔 너무도 힘들고 무기력하고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자살생각도 했는데.....지금은 그렇지 않아 훨씬 지내기는 수월합니다(당시 상담치료 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부부관계가 너무 힘들고 해서 이 문제로 다시 상담을 시작했으면 해서요......저도 제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고, 제 자신이 어떤 면에선 좀 두렵기도 하거든요. 남편에 대한 증오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분노가 어떻게 폭발할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제 소식 내지는 치료 중단 후 경과도 전해드릴 겸사겸사 해서 밤샘을 하면서 이것저것 적었습니다. 고민하며 밤을 샌 끝이라 정신이 혼미해서 두서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작년과 비교하면 당시의 심각하던 상황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제 우울증이나, 비만이나......그런데 남편과의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 나네요....남편과 저 사이의 문제를 설명하려 노력해 봤는데 다른 사람들도 잘 이해를 못하더군요. 저도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확실히 뭔질 잘 모르겠어요. 머리만 아프고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좋을지도 모르겠구요. 남편과 이대로 가면 서로 자꾸만 불행해지고 서로의 가시로 서로를 파멸시키는 것만 같아 어찌하면 좋을까 해서 망설이다 망설이다 계기가 되어 선생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아직도 서울에 오시는지요? 강의는 계속 하시는지......궁금합니다. 시간이 있으실지요? 답장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치료의 결과

부인 B씨는 초반기 치료의 6개월의 치료 과정에서 치료 시간에 내내 울면서 통곡으로 보냈다. 자신의 내면 속에 갇힌 울분, 분노가 쏟아져 터져 나왔다. 그녀는 치료자에게 오기 전에 유명 정신과 의사에게 부부가 치료를 받다가 실망하고 치료를 중단하면서 의도적으로 치사량에 못 미치는 약물을 복용하고 하루 동안 의식불명으로 있다가 깨어났다고 했다. 친정 어머니가 부인 B씨의 2살 된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 아기를 데리러 오는 시간에 음독을 하고 어머니에게 "내가 약을 먹었습니다" 라고 실토를 했다. 그러나 병원에 실려 가지는 않았다.

친정 어머니는 딸이 깨어나기를 기다렸고 하루가 지나서 부인 B씨는 깨어났다. 이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다고 했다. 자살 시도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지 않을 것으로 알고 약물을 복용했다. 이러한 자살 시도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점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남편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부인 B씨는 섹스 욕구를 억압해서 사춘기를 통과하게 되었다. 그녀가 의대에서 인턴을 받을 때까지 그녀는 자위행위라는 것을 몰랐다. 요즘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생리가 시작되어 초등학교 6학년 정도가 되면 대부분이 사춘기에 들어가게 되고 이성에 흥미와 관심을 보이게 되고 이성을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어야 하는데 부인 B 씨는 사춘기에 들어 가며서 좋아하는 남학생을 혼자서 좋아하다가 어머니에게 들켜서 혼이 난 후에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섹스 욕구를 억압했고 공부에다 전념을 했다.

그녀에게 이성을 좋하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개발하는 사춘기는 고등학교 시절에 성당에 한 신부님을 좋아해서 마음 속에서 혼자서 연모한 것이 그녀의 사춘기의 전부였다. 그녀는 부모님을 따라서 성당에 다니면서 중학교 시절에는 수녀가 되고 싶어서 수녀들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이러한 것을 알 게 된 어머니에게 혼이 난 후에는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분석해 가면서 상처 기억 등를 찾아내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데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치료가 6개월 치료 계약 시간인 총 치료 시간인 48시간에 가까이 가면서 남동생의 부인과 전화 통화에서 4시간 동안 서로 의사 소통을 했다는 것에서 부인 B씨의 의사 소통이 뚫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편과의 소통도 조금씩 개선되어갔으나 남편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군 복무 후에 선배와 동업으로 세 사람이 공동으로 3 곳에 치과 의원을 공동으로 연합 치과 의원을 개업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지 못하고 동업에서 탈퇴하고 월급을 받는 치과 의사로 바꾸었으나 6개월 후에 다시 지방에 있는 한 선배의 치료소에서 봉급을 받고 지방에 내려가서 주말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직장 역시 3개월 쯤에 지나면서 그만 두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고 했다. 부인 B씨는 두 번째 6개월의 치료가 끝나가는 시쯤에서 지금까지 파트 타임의 일자리에서 벗어나서 풀 타임으로 의사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게 되면서 1달 가량 남은 치료를 끝내지 못하고 치료를 중단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psychclinic/220877365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