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 9: 결혼 4개월 만에 별거 부부의 심리치료 2

 

부부로 살아 오면서 우리는 자주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와 만남이 우연히 어떤 파티에서 혹은 어떤 모임에서 혹은 어떤 캠핑에서 혹은 어떤 지인의 소개로 서로 만나게 되어 서로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다고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프로이트는 이 세상에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반드시 어떤 일의 결과에는 그 사건의 원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로써 심리적인 결정론(psychic determinism)를 주장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우연히 지금의 파트너와 만났다고 생각을 하는 우연은 의식적인 만남을 말한다. 그냥 보면 그 파트너를 어떤 계기로 인해서 만났고 그 사람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을 할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을 하면 우연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모르는 내 자아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끌리고 서로 애착을 형성하게 되었는가? 를 분석으로 밝혀본다면 이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프로이트의 말이 실감이 날 것이다.

왜 우리가 지금의 파트너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무의식적인 자아의 분석으로 한번 다루어 보기로 하자. 우리는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거나 호기심을 가질 때는 모든 여자가 다 좋은 여자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할 때도 모든 남자가 다 좋은 남자로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호기심이 가는, 애착이 가는 그 자신 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 스타일에 일치 될 때는 우리는 그 사람에게 호기심이 가고 애착이 가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파트너의 따뜻한 마음 씨, 좋은 학력과 명석한 두뇌,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 환경,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친밀한 애착 관계, 머리 회전 능력이 뛰어남, 친절함과 배려심, 자신감과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 배짱이 두둑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 의리를 중요시 하는 충성스러운 사람 등등 수 많은 특징들 때문에 사람마다 다 다른 특징들에 의해서 우리는 상대방에게 끌리고 애착을 보이고 그 파트너가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왜 하구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내가 끌리고 매력을 느끼고 호기심을 보이게 될까? 하는 것들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왜 이러한 특징들이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날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분석하게 되면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경험으로 뇌에 입력이 되고 그러한 모든 경험들이 종합적으로 통합이 되어져서 내 자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고로 어떤 특징들은 우리가 자랄 때 우리 자신이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들 혹은 우리가 소망했던 것들에 대한 기대, 부러움 등 즉 내가 가지지 못한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가진 상대방에 끌리고 호기심이 생기고 애착이 가는 것이 아닌가! 즉 내 한데서는 없는 것들,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 내가 부러워했던 것들을 가진 그 대상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그 대상이 이상적으로 보이고 훌륭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부부 문제를 연구하고 치료하는데 평생을 받쳐온 전문가들의 의견들은 위와 같은 이러한 견해들을 보상적인 만남으로 이론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부족한 부분, 없는 부분들을 갈구하게 되고 그것을 기지고 있는 그 대상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도록 갈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과 가까워지면 그들이 가진 것을 같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결국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Stevens-Long & Cobb, 1983),

이러한 예들은 우리 주변에서 딱딱한 기계를 다루는 공과대학을 졸업한 배우자가 감정을 주로 다루는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파트너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예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 반대로 사실이 아닌가? , 문학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사람들이 사무적인 일에 종사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두 번째 반드시 내가 없는 부분에 대한 갈구 때문에, 소망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가진 대상에게 접근하거나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한 질투심, 시기심이 오히려 그 대상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애착을 회피하는 경우들도 수 없이 많지 않는가! 대신에 내가 가진 것과 유사한 것을 가진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하게 되면 갈등들이 줄어들 수가 있지 않는가? 나와 유사하면 나와 그 대상과 갈등이 줄어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예를 들어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일란성 쌍둥이로써 그 사람은 바로 나의 복제품이 아닌가? 고로 그러한 사람과는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두 번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일치성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부부들의 만남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본다. 남편과 부인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수 많은 부부 들을 많이 본다. 예술가 부부, 교육자 부부, 변호사 부부, 체육계, 연예인 부부 등이 그들이다?(Stevens-Long & Cobb, 1983).

어느 쪽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든지 간에 어느 쪽이 더 행복하고 더 좋은 파트너의 선택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취사 선택은 우리의 어린 시절과 관계 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사성이냐 혹은 보상 쪽이냐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독특한 성장 과정의 가정환경 즉 가족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가 그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욕구 문제로 본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욕구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들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늘 이야기를 하는 5욕과 7정이 아닌가? 5욕은 식욕, 성욕, 수면욕, ()에 대한 욕구, 명예(名譽) 욕으로 성공과 출세의 욕구이고(불교의 화엄경에서 5개의 욕구), 7개의 감정은 희(), (), (), (), (), (), ()이 그것이 아닌가? 이러한 욕구들은 성장의 과정에서 부모님과 상호작용에 의해서 채워지게 되는데 이러한 욕구들의 결함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욕구에 과도한 애착과 집착을 낳게 된다는 것이 정신분석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김종만, 1999).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욕구의 고착을 한()이 맺힌다는 말로써 사용되어져 왔다. 한이 맺히면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떠 돌아다니면서 복수를 갚은 후에야 저승으로 되돌아간다는 옛날 우리 조상들의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납량 특집 극들이 그러한 예가 아닌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구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 조상들이 한()을 품는다는 말은 원한을 품었다는 말이고 이것은 바로 서양에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욕구에 고착이 생긴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서 어린 시절에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은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서 그 사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고로 사랑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을 갈망하게 되고 그러한 사람에 애착을 보이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러한 사랑의 갈구의 욕구가 채워 넣어진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그러한 욕구는 채워도 채워 넣어도 끝이 없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격이 되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고착 이론으로 불리고 있다. 그 욕구의 부족으로 결함으로 결과해서 그 욕구에 상처를 입게 되었고 그 상처의 회복을 위해서 그 사람은 그 사랑의 부족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나 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5개의 욕구가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결함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것들은 모두 무시에 버리고 오로지 그것에만 집착을 하기 때문에 다른 욕구들의 부족으로 손상을 입게 된다는 뜻이다. 즉 모든 에너지를 사랑이 흡수를 해서 집착하게 되면서 결국은 다른 욕구들이 손상을 입어서 결국은 사랑 때문에 그 자신이 파괴되어버린다는 것을 정신분석에서는 강조 하고 있다. 더욱 더 나아가서 그 집착은 그 대상의 자신 한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대대로 대물림이 되어서 자녀들에게로 이전이 된다는 주장이다.

아래의 치료 사례에서는 30대 후반의 한 남성이 30대 초반의 여성과 7년 동안 연애 끝에 올해 1월 달에 결혼식을 올린 후에 4개월 만에 짐을 싸가지고 별거를 선언하면서 집을 나와버렸다. 그의 불평불만은 부인과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는 한 지인의 소개로 치료자에게 6개월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치료 사례의 치료 과정을 소개하기로 한다.

대상: 35세의 A

증세: 7년 동안 연애 시절에 A씨가 연인 B씨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주고 달래주다가 핵심 갈등들은 해결되어지 않고 쌓이게 되면서 정작 A씨 자신의 내면적 욕구 불만이 누적되어지면서 이혼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의사 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음

진단: 의사 소통 문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사람(Alexithymia), 심인성 질환(알레르기 비염, 두통, 소화성 장애)

접촉: 7년의 연애 끝에 결혼 식을 올리고 결혼 4개월 만에 이혼을 결심하게 된 남편 A씨가 치료자의 지인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1회 치료 회기에 2시간씩 1주일에 4회로 월, , , 목요일 오후 6-8시로 48시간의 치료 계약을 했음, 3 6시간 치료 회기를 가짐

치료 과정: 연애 경험 7년에 결혼 하기 1년 전부터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잡히게 되었음. 결혼을 한지 어제는 결혼 4개월 후에 별거를 결심하고 집을 나오게 됨

3 회 치료 회기 과정의 소개

월요일 치료 회기에서 A씨는 6시에 도착을 했다. 치료자가 그 동안 지난 주말 동안에 어떻게 지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A씨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고 했다. 어떤 눈물이었는지? 물었을 때 부인이 혼자 있으면서 힘들어하지 않을까?라고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그리고 부모님 생각이 났다고 했다. 부부 사이에 좋지 않은 부모님에 생각이 났다고 했다.

치료자가 부인 B를 처음 만났을 때 부인의 어디에 매력을 느꼈는지?를 물었을 때 크게 매력을 느껴서 끌린 것은 별로 없었는데 부인 B씨의 가족이 따뜻해 보이고 A씨 집의 부모님과는 다르게 느껴졌다고 했다. A씨와 B씨는 캠퍼스 커플로 사귀었다고 했는데 대학 몇 학년 때 서로 캠퍼스 커플이 되었는지?를 물었을 때 A씨가 대학 4학년 시점에서 학생 회장을 하고 있을 때 B씨가 총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회 멤버들과 여행을 떠나는데 A씨는 학생 회비가 제한되어져 있기 때문에 A씨는 개인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사주고 싶어서 슈퍼에 가서 필요한 식품과 간식을 사는데 총무인 B씨가 기분이 나빠해서 삐쳐서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현을 하는 것을 이해를 할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그 이유는 세월이 흘러간 이후에 부인 B씨의 대답은 "왜 개인의 사적인 돈을 공적인 곳에 그러한 곳에 사용하는지? 즉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혼합을 하는 것에 화가 났다"라고 말을 해서 도무지 이해가 되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가 컴퍼스 커플이라고 하면 같이 강의도 듣고 데이트도 하는 커플을 말하는데 A씨 커플은 졸업 몇 개월 전에 만났다고 했는데 A씨가 B씨보다 4살이 많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같은 학년인지?를 물었을 때 A씨는 군복무 이후에 대학에 다시 입학을 해서 B씨와 같은 학년으로 4년을 대학에 다녔다고 했다.

치료자는 A씨의 학력 관계를 다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A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에 xx 전문대학에 들어가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를 하는데 동료들의 수준과 학교의 면학 분위기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휴학 계를 내고 군복무를 하고 나서 전역 후에 다시 xx 대학 국문과에 들어가서 국문학과 심리학을 복수 전공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때 같은 학과인 부인 B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서로 아는 사이로 지냈는데 학생 회장과 총무로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 날 B양이 하숙집에서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의 통학거리를 불평 없이 잘 하는 것을 보고 호감이 갔다고 했다. A씨 자신은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친구들이 많은 반면에 B양은 평소에는 소극적이고 말이 없고 친구들도 몇 사람에만 국한 되어져 있어서 별로였는데 장거리 통학에도 불평 불만 없이 잘 견디어 내고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호감이 갔다고 했다.

치료자는 A씨가 은행에서 근무를 했다는 말을 회상을 하면서 대학에서 경영학 혹은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고 국문학과 심리학을 공부를 한 A씨가 어떻게 은행 근무를 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A씨는 졸업 이후에 전공 불문으로 사원을 뽑는 은행 시험에 합격해서 은행에 들어가서 1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 은행에 3년 근무를 하고 나면 본사에서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직책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은행 업무가 아닌 은행원의 교육 담당 부서에 흥미가 있었는데 늘 동료들에게 심리학과 교육 부분을 통합해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들은 동료들이 최근에 대학에서 입학생들을 서류를 보고 뽑는 심사를 해서 뽑는 수능 입학 사정관을 뽑는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를 해서 xx 대학 입학 사정관이 되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B양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졸업 직전에 두 사람은 커플로 만나서 사귀기 시작을 했고 사귄 지 2년이 끝나고 3년이 시작된 시점에서 A씨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B씨는 결혼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으로 처음 서로 갈등이 생겼다고 했다. 이후에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B씨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적어도 약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한 후에 결혼을 할 계획이어서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했다. A씨는 그 이후에 xx 대학원에서 상담 심리학을 졸업을 하고 지금은 개인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부인 B씨가 남편 A씨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었는지? 어떤 매력에 끌려서 A씨와 결혼을 했는지?를 물었을 때 부인B씨는 남편이 원대한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끌리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A씨의 부모님과 가족 관계의 이야기를 다루기로 했다. 먼저 부모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물었을 때 A씨는 아버지는 제약 회사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 회사의 약품들을 병원에다 제공해주는 딜러 일을 했는데 매출을 많이 올려서 전국에 판매 왕의 자리를 차지를 하는 등 한때는 보너스가 봉급보다 더 많아서 경제적으로 윤택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는데 외향적이고 돈을 잘 쓰는 쪽으로 집에서 전업 주부 스타일보다는 바깥 출입을 좋아하는 사교적인 타입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것 보다 항상 외출을 하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스타일 이어서 아버지가 집에서 가족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 때 돈을 많이 벌어서 큰 누나가 대학에 입학을 했을 때 승용차를 사주었고 작은 누나가 대학에 입학을 했을 때 다이야 반지를 해 줄 정도로 넉넉했지만 A씨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빚 보증으로 인한 가산의 탕진 그리고 어머니의 음주와 이상한 행동들 때문에 부모님은 지금도 A씨에게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가압류되는 바람에 형제들의 명의로 이전을 했는데 형제들이 서로 싸우고 재산을 내 놓으라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싸우고 괴롭히고 이전된 재산들을 차지하는 바람에 친가 가족들과 사이가 틀어져서 지금은 막내 삼촌과는 연락이 있지만 모두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고 했다. 지금은 막내 삼촌이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아버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유치원 시절에는 A씨는 유치원에 다닌 기억은 있는데 어느 유치원인지 여자 선생님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을 좋아한 기억은 있어나 유치원 때 기억나는 동료들 그리고 재롱 잔치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가 살림 보다는 사교적이고 돈을 잘 쓰는 쪽으로 집에 붙어있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다투게 되면 어머니는 집을 나가서 1주일이고 1달이고 집을 자주 나갔던 기억이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가출을 자주 해도 A씨는 친구들과 늘 놀았기 때문에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고 했다.

A씨의 가족은 7살 많은 첫째 누나와 5살 많은 둘 째 누나가 있고 A씨는 막내였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누나들은 나이 차이로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 현재 70세가 되었고 A씨가 34살 부인 B씨가 30세 그리고 누나는 41세로 그리고 작은 누나는 39살로 모두 결혼을 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가정부가 있었고 가정부의 2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A씨보다 나이가 2살 많고 다른 한 사람은 A씨와 같은 나이로 같이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가정부가 몇 명이 바뀐 것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약제상 즉 한약제 상을 했는데 부유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전업 주부로써 친가 가족들은 아버지의 누나인 고모가 있었는데 결혼 후에 세상을 떠났고 고모의 자녀들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가 장남이었고 그리고 삼촌이 있고 고모가 한 명 그리고 막내 삼촌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외도를 하는 바람에 A씨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어머니는 A씨에게 저녁 때가 되면 비디오 방에 가서 무서운 공포 영화 비디오를 빌려 오라고 심부름 시킨 것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5학년 시점에는 저녁에 맥주를 3병씩 사오라 라고 심부름을 시켰던 것이 기억이 났다. 어머니는 그 시쯤에서 아버지의 외도로 밤에 잠을 잘 수 없어서 불면증으로 이것을 견디기 위해서 비디오와 술을 마신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어머니가 알 게 되고 부부 싸움이 폭발해서 온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하겠다면서 자녀들에게 누구를 선택을 할 것인지? 아버지를 선택할 것인지? 어머니를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하라고 해서 A씨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겠다고 한 것을 기억을 했다. 그 때 기억이 나는 것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내연녀의 어머니에게 절을 하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노발대발했던 것을 기억을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 이후에 봉합이 되었고 별문제가 없었는데 A씨가 중학교 2학년 때 IMF가 터졌고 아버지는 병원을 짓는 사람에게 보증을 서 주는 바람에 IMF의 부도로 재산을 잃고 빚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떤 종합병원을 설립을 하는데 보증을 섰다가 그 종합 병원이 실패를 하는 바람에 빚 보증으로 가산을 차압 당하고 지금까지도 법정에서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가 사망하고 고1학년 때 할머니의 사망으로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고 빚 보증으로 가산을 탕진하게 되면서 어머니가 술을 마시고 폭발을 하게 되면서 A씨의 가정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재산이 날아가 버린 것에 대한 분노로 매일 술을 마시게 되었고 술을 마시면 환각 증세와 환청 증세를 보이게 되었고 아버지와 가족들과 시비를 벌려서 온 가족이 쑥대 밭이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몇 달 이후에 퇴원을 하면 재발을 반복해서 아무도 어머니를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술을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비를 벌리고 행패를 부려서 깡패들도 어머니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고 연락이 왔을 때 아버지와 누나들과 함께 파출소 근처에 가서 A씨를 보고 네가 파출소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모시로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것을 기억을 했다. 누나들은 항상 막내인 A씨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아버지도 체면을 중시해서 아들인 A씨에게 파출소에 붙잡혀간 어머니를 데리고 오라고 심부름 시켰던 것을 기억을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외도로 불면증이 되면서 밤에 술을 사오라고 A씨에게 시켰을 때 누나들은 여자가 어떻게 술을 사올 수 있느냐?라고 A씨에게 심부름을 시켰던 것을 회상을 하면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누나들도 모두가 이기적이고 자신들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A씨 한데는 호감을 주지 못하고 분노의 대상이라고 토로 했다.

치료자는 언제부터 A씨가 가장 힘들었다고 느꼈는지?를 물었을 때 고교 1학년 시절부터 어머니의 난폭한 행동과 컨트롤 부족으로 고통을 받았고 고등학교 3년 그리고 전문대학 1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고 xx 대학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되면서 기숙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부모님과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사춘기를 후반부에 약 5년 동안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회상을 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치료자는 A씨에게 사춘기 시절을 통과하면서 부모님들로부터 받은 심리적인 상처들이 지금 A씨의 문제에 몇 % 정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는가?를 물었을 때 A씨는 망설이지 않고 50%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을 했다.

오늘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치료 예약이 되어있기 때문에 치료 회기 이후에 가지는 인턴과 상담 논의는 오늘은 생략하기로 했다.

다음의 치료 회기 과정의 소개에서는 A씨의 초, ,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학교 생활과 동료들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학교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린 것이 특징이었고 왕따나 혹은 따돌림을 당한 것은 거의 없었고 선생님들과 갈등이나 애착 관계는 거의 없었다.

아래의 치료 회기 과정의 소개에서는 제1회 치료 회기에 2시간 씩 1주일에 4회로 월, , , 목요일 오후 6-8시로 48시간의 치료 계약을 했음, 4 8시간 치료 회기를 가짐

4 회 치료 회기 과정의 소개

화요일은 저녁 6시에 정확하게 도착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보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A씨는 3개의 꿈을 보고를 했다. 한 개는 학교 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 40대 후반의 나이 많은 여자 선생님이 그의 엉덩이를 붙잡고 희롱을 하려는 것을 보고 크게 꾸짖으면서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라는 항의를 하다가 깬 꿈이었다고 했다. 두 번째 꿈은 A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어떤 학생이 다른 학생이 괴롭힌다고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그를 대신해서 어떤 다른 몸집이 큰 학생을 제지를 하는 꿈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꿈은 어린이가 되어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동료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꿈으로 만화에 나오는 특이한 공상 과학 영화 같은 내용이었는데 그 꿈에서 느낀 감정을 물었을 때 호기심적인 장난끼적인 꿈이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지난 주일에 첫 번째 꿈에서 강아지가 여러 마리의 뱀 속에서 나오다가 그 중에 한 마리의 뱀에 물리는 꿈을 꾸었다고 했는데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A씨는 있다고 했다. 그 강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A씨는 둘째 누나의 남자 친구가 A씨가 고등학교 학생 일 때에 남자 친구로부터 선물로 강아지를 한 마리 받았는데 그 강아지가 며칠 만에 사고로 죽어 버리자 큰 누나가 그 시점에서 어머니가 알 게 되면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인터넷에서 강아지를 검색해 본 결과 강아지를 한 마리 사서 죽은 강아지를 대체를 했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왜 강아지를 대체 시켰는가?라고 물어서 그 강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꾼 것이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이후에 약 10년 동안 키우다가 죽었다고 했다. 그 강아지와 A씨와 관계를 물었을 때 그 강아지를 보면 귀여워하고 예뻐했으나 주로 그 강아지와 집중적인 관계를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했다. 이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다니다가 군에 입대를 해서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면서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한번씩 집에 오면 그 강아지를 보게 되고 강아지와 특별한 관계는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주로 그 강아지와 관계를 했다고 했다.

치료자는 A씨의 학교 생활을 스크린 해 보기로 했다. 유치원 시절에는 특이하게 기억이 나거나 특이한 이벤트 혹은 유치원 선생님과의 관계 즉 갈등관계 혹은 애착관계 등은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점에서 입학 후에 키가 가장 커서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대장 비슷하게 서열이 생기게 되었는데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갈굼을 당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40대 중반의 여자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A군이 공부 시간에 돌아다니고 주의가 산만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 게 되었다고 했다. 나중에 통신표에 주의 산만이라고 기재가 되어있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가 외향적 성격이라고 해서 늘 집 밖에서 비교적 사교적으로 돈을 많이 쓰는 쪽이어서 아버지가 그것을 싫어해서 어머니와 갈등이 생기면 어머니는 가출을 해서 며칠 혹은 몇 주일 혹은 1달 이상을 집에서 사라졌던 기억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A씨의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을 찾아와서 치맛바람을 일으켰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가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이 없고 A씨는 학교 생활과 공부에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했다. A씨의 기억에는 공부 시간에 돌아다니거나 주의 산만한 기억이 없는데 담임 선생님이 학기 초에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버지가 사업으로 그 시점에서는 아버지의 경제력이 풍부해서 잘 사는 쪽으로 기재가 되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가 한번 찾아오지 않는다고 A씨에게 보복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 A씨는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동료들과 어울려서 놀기에 바빴다고 했다. A씨 자신은 집안의 경제력에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시점에서는 별 다른 일은 없었고 특이하게 기억이 나는 선생님들도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시점에서 어머니가 밤에 불면증으로 무서운 공포 영화 비디오들을 빌려 오라고 했고 그리고 맥주를 3병씩 사오라고 했었기 때문에 심부름을 한 것을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학교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을 온 학생으로 키가 크고 덩치가 큰 학생으로 인정을 해 주어서 동료들에게 무시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공부는 중간 정도로 공부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점에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전학을 간 학교가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형성해서 작은 시골 학교에서 18명 정도의 한 학급에서 새로 18명 정도의 학생들이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A씨는 한달 가량 늦게 전학을 와서 동료들이 A씨를 넓은 평수에서 나는 부잣집 학생으로 그 시점에서 담임 선생님이 넓은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으로 좋지 않는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친구들이 자주 너희 집 아파트가 몇 평이냐?를 자주 물어 보는 것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점에서 그 친구들이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실토를 하는 것을 듣고 다시는 아파트 평수에 대해서 물어보지 말 것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점에서 어머니의 지갑에서 5천원을 훔쳐서 전자 오락실에 가서 전자 오락을 했다가 어머니에게 틀 통이 나서 엎드려 뻗쳐를 시켜놓고 빗자루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 이후에 전자 오락을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전자 오락실에 가서 2시간-3시간씩 전자 오락을 했는데 고등학교 시설부터 개인 컴퓨터로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스타그래프 등으로 몇 시간씩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게임 중독 정도는 아니고 그 시점에서 컴퓨터의 개임을 많이 하던 다른 청소년들과 비슷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담임 선생님이 특이한 미술 시간에 지푸라기 등으로 물감을 묻혀서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자주해서 싫증이 나고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특이한 것은 없었고 공부를 하려고 애착을 가진 적은 없었고 중간 정도의 실력으로 늘 동료들과 어울려 놀기에 바빴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IMF가 터졌고 집안에 붉은 딱지가 붙어있고 사람들이 아버지가 늘 우리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라고 해서 못사는 사람으로 돈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진학 때는 돈이 없어서 대학에는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특수 학급을 편성해서 야간 자율 학습을 실시하게 되자 야간 자율 학습에서 빼 달라고 요구를 해서 담임 선생님이 이사하게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여름 학기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 이후에 공부를 못하고 방해를 하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시끄럽게 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특수 과목을 공부한다고 학생들에게 속이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저녁에 특수반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집에 일찍 가라고 쫓아 내는 것에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남녀 공학으로 여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했으나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없었고 친하게 지낸 여학생은 없었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남자 고등학교였고 이성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으로 늘 신경을 쓰던 옷차림과 외모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고 했다. A씨는 늘 외모와 옷차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남자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신문 기자로써 글을 썼고 수학에는 관심이 없었고 문학에는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서울 사람들로 서울에서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 이후에 아버지가 직장이 xx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xx 지역에서 누나들이 태어나고 A씨도 태어나서 학교를 xx 지역에서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수능 점수는 정확하게 얼마 정도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입에 실패를 하고 전문대학에 컴퓨터 공학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한 학기 하다가 그만두고 군에 입대를 했다고 했다. 군에 입대를 해서 전방에서 근무한 것이 아니고 후방 xx 사단에 근무를 하면서 예비군 훈련을 시키는 조교로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 입대를 해서 몇몇 고참들이 깡패 같이 굴어서 A씨에게 아버지의 직업과 수입을 물어 보길 때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을 때 고참들이 아버지의 직업과 수입을 모르는 놈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하면서 처벌을 한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전역하고 나서 별 다른 문제점은 없었다고 했다.

전역 이후에 1년 동안 대학을 졸업한 누나와 함께 공무원 시험을 공부를 1년 정도 하다가 누나가 떨어지는 것을 본 어머니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잘 한 누나도 떨어지는데 너는 가망이 없다고 해서 대학에 들어가기로 하고 xx 대학에 수학 과목을 시험을 치지 않는 xx 학과에 원서를 넣었을 때 합격이 되어서 xx 대학 국문과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복수 전공으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 다닐 때 학과 공부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졸업 후에 공무원을 시험을 공부하겠다고 목표를 정했기 때문에 대학의 학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큰 누나는 학교 시절에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의 큰 기대를 걸었는데 수능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지방 대학인 xx 대학에 진학을 했고 둘 째 누나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성적을 알고 보니 정말로 공부를 못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큰 누나가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을 때 어머니에게 1점 혹은 2점 차이로 떨어졌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학교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에 xx 은행에 들어갔을 때 은행원들의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지원을 하려고 생각을 했고 군 복무 시에 예비군 교육을 시키는 조교로 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은행원으로 근무를 할 때 xx대학 입학 사정관으로 가서 일을 하다가 담당자와 갈등으로 부당하게 일을 과도하게 하도록 하고 규정에 어긋난 것에 항의를 하고 나서 그만두고 다른 대학들에 입학 사정관을 몇 번 응시를 했으나 불합격해서 입학 사정관을 하려고 하면 최소 대학원 졸업을 요구하는 것을 알고 xx 대학원에서 상담 심리학을 공부를 하고 졸업을 했다고 했다.

대학 때 심리학을 복수 전공을 했다고 했는데 심리학을 공부해 보니 재미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A씨는 심리학을 생리적인 치료 쪽으로 즉 뇌의 신경 호르몬 혹은 약물 처방 쪽으로 공부를 하는 바람에 재미가 없어서 흥미를 잃었는데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에는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대학 입학 후에 학생 회장으로 있는 선배가 도움을 요청을 해서 어울리게 되었고 그의 지도력이 선배에게 도움이 되자 학생회에 일을 하라고 해서 거부는 하지 않고 같이 어울리다가 3학년 때는 학생회장을 하게 되었고 총무로 있던 부인 B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시절에 학생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여성들과 만이 만나게 되었고 여성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대학 3학년 때 학생 회장을 하면서 총무를 하던 부인 B씨를 만나게 되면서 이성 관계로 발전이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는 A씨의 초, , 고등학교 시절의 학교 생활들을 체크를 해 보았으나 별 다른 큰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친구들과 관계는 이성관계가 단절되어있고 주로 동성 관계였다는 점이 특이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학교 생활과 지난 주일에 부모님들과 갈등관계 등을 결혼을 한 부인에게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는지?를 물었을 때 A씨는 대부분이 이야기를 했었다고 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부인B씨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물었을 때 힘들었겠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이외에는 들어주는 것 이외에는 특이 하게 감정적인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지금하고 있는 일은 어떤 일인지?를 물었을 때 지금의 xx 영재원에서는 아르바이트 정도이고 성격 심리학에서 각자의 잠재된 능력을 개발해서 알 게 만들어주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구상이 몇 % 가 진행이 되고 있는지?를 물었을 때 10% 정도 진척이 있다고 했다. 앞으로 이 아이템을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 주는 재정지원자를 구하면 사업은 실행이 된다고 했다.

치료자는 A씨에게 인턴 선생님이 치료자에게 너무 반복해서 똑 같은 말을 많이 해서 시간이 낭비된다는 불평을 했는데 A씨는 치료자와 이야기가 지루하고 시간 낭비적인 느낌이 들었는지?를 물었을 때 약간은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할만 하다고 좋게 평가를 했다.

치료자는 다른 손님들(환자들을 치료자는 손님으로 호칭)과 똑 같이 관계를 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하거나 치료자에게 좋은 말로써 치료자를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당당하게 치료를 해 주세요 라고 적극적인 자세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2시간 동안의 분석 상담에서 눈에 띄는 것을 이성과의 관계에서 사춘기 시절에 이성과 관계가 미성숙한 점과 가족 관계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즉 부모님은 자신들의 문제 때문에 사춘기 진입 시에서부터 막내 아들인 A씨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로 A씨는 스스로 혼자서 살아 남는 방법을 터득 했다는 점이었다.

다음의 치료 회기 과정의 소개에서는 A씨의 어머니의 형제들과 부모님과의 관계를 분석으로 다루고 있다. 아버지는 대학 시절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 여학생의 친구인 어머니를 알 게 되었고 연애 결혼으로 혼전 임신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결혼 이후에 친정과 관계가 거의 끊어졌고 아버지의 외도가 들통이 나면서 부부 싸움으로 같이 살아도 별거로써 살고 있다고 했다.

아래의 치료 회기 과정의 소개에서는 제1회 치료 회기에 2시간 씩 1주일에 4회로 월, , , 목요일 오후 6-8시로 48시간의 치료 계약을 했음, 5 10 시간 치료 회기를 가짐

5 회 치료 과정의 소개

수요일 치료 회기에서 A씨는 6시에 도착을 했다. 어제 치료를 끝내고 집에 가서 있었던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고로 치료자는 어제 이야기를 했던 것에서 계속하기로 했다.

치료자는 친가의 가족들과는 이야기는 어제 치료 회기 때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관계인 외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 사람들로써 결혼 후에 아버지가 직장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지방인 xx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자녀들은 2명의 누나(큰 누가 7, 작은 누나 5살 차이) A씨는 지방인 xx 시에서 태어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서울에서 살았고 할아버지는 한약제들을 다루었고 한의사는 아니었다. 생활이 어려워서 아버지는 일찍 감치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고학으로 공부를 하다가 고등학교 여학생의 과외 선생님을 했는데 그 여고생의 친구가 어머니였고 어머니를 알 게 되면서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기 전에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여고 졸업 후에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해 본 적도 없고 결혼 이후에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A씨가 초등학교 5학년 혹은 6학년의 시점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울에서 집을 청산하고 아버지와 합류하겠다고 하시면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근무하는 지방의 소도시(개발지역이어서 시골처럼 한적한 아파트 지역)의 변두리에서 큰 평수 약 90-95평으로 방이 5개의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살려고 계획을 했는데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는 시골에 내려오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파트를 팔려고 해도 너무 큰 평수여서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중간에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아버지가 매매 가격을 많이 요구해서 무산되고 아버지가 병원을 설립하는데 보증을 서 주었기 때문에 소송으로 번져가서 지금도 소송이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고 아버지의 아파트는 차압을 당해서 팔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차압이 풀려서 법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었고 아파트는 아직도 소유를 하고 있지만 병원 설립자의 사기에 휘말려서 아직도 법정 소송을 벌리고 있다고 했다.

중간에 A씨가 아버지에게 그 문제를 접고 차라리 변호사 비용으로 들어가는 돈으로 생활 비용으로 보태서 조용하게 사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포기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만나면 법정 소송 이야기를 장구하게 늘어 놓고 A씨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를 간 대형 아파트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너희 집 아파트가 몇 평이냐?"라고 물어본 이후에는 친구들이 너의 집 아파트가 몇 평이냐?라고 자주 물어 보는 것에 화가 나서 중학교 1학년 시점에서 친구들에게 제발 너희 집 아파트 평수가 몇 평인지?를 물어 보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이 아파트 평수를 물어 보는 말 속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느꼈다고 했다. 돈이 얼마나 많아서 그렇게 큰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혹은 큰 아파트에서 호화스럽게 살고 있다는 좋지 않는 이미지로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다시 어머니의 가족 즉 외가 이야기로 되돌아 갔다. 어머니의 형제들과 부모님에 대해서 물었을 때 어머니는 결혼 이후에 친정과 관계를 거의 단절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이 차이가 6살 차이로 어머니는 여고 졸업 이후에 일찍 결혼을 했고 그리고 외향적이고 씀씀이가 많아서 돈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안에서 살림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돈다 라고 불평을 하고 부부싸움을 하면 어머니는 가출로써 1-2일 혹은 1주일 혹은 1달 가량을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2명의 오빠가 있었는데 배다른 오빠로 이복 형제였다고 했다. 결혼 후에는 그들과 관계가 끊어졌고 막내 이모와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관계가 갈등 관계로 좋지 않았다고 했다. 외할머니께서는 지금도 서울 인근에서 96세로 살고 계시고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A씨는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간 적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를 해준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어머니와 A씨의 어린 시절의 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양육자로써의 어머니 즉 돌보아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배려와 돌봄의 면에서 어머니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 50 0점으로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수 있겠는지?를 물었을 때 A씨는 2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A씨는 어머니의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일찍부터 어머니의 가출과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로 어머니가 공포 영화 비디오 그리고 술을 마시게 되면서 혼자서 독립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일찍부터 살아 남기 위해서 독립심이 강해진 측면은 어머니 때문에 생긴 것으로 고맙게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60점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와 A씨와 관계에 대해서 아버지의 삶을 A씨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를 물었을 때 아버지는 실패한 삶으로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유는 아버지는 초반기에는 판매 왕으로 선발되기도 했고 월급보다 보너스를 많이 받아서 경제적으로 넉넉했지만 A씨가 중학교 2학년 때 IMF로 아버지가 병원 설립에 보증을 섰다고 병원의 부도로 빚 보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치료자가 아버지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A씨는 아버지는 한가지 일에 끝까지 분투하고 매달리는 끈질긴 면과 일벌레로 항상 일에 파묻혀서 살아 왔고 단점으로는 명령, 지시적이고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권위적이고 사치적이고 고급품을 선호하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 즉 부인인 어머니, 딸들과 아들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일하게 가족들이 같이 모이는 시간인 식사 때에는 아버지는 자녀들이 반찬을 집으려 할 때 젖 가락으로 반찬을 털면 국물이 떨어진다고 야단을 치고 식사를 할 때 밥풀을 흘리면 노발대발하고 특별이 둘 째 누나에게 심하게 해서 둘 째 누나가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아버지에게 예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항상 자녀들이게 칭찬 보다는 비판적으로 처벌적이고 이것도 못하느냐?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등등으로 자녀들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고 처벌적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69세로 병원에서 약품 공급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법정 소송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늘 우리 아파트가 날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아직도 그 아파트에 살고 있고 그리고 아버지가 생활 비를 벌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생활 비용을 자식들이 부담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신사복에 유행에 민감해서 고급 옷들과 유행을 즐기는 스타일이고 어머니는 사치품과는 인연이 멀고 돈을 쓰고 싶은 데로 쓰는 스타일로써 아버지와는 대조가 된다고 했다. 낭비는 남는 것이 없지만 사치는 남는 것이 있다는 유행어를 사용해서 아버지는 고급과 사치품을 즐기는 편으로 고급 외제 사치품들이 많지만 어머니는 주로 돈을 낭비하는 버릇이어서 남아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외모, 옷차림, 유행 등에 무관심해서 꾸미지 않고 돈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 취미여서 항상 돈의 부족으로 돈 타령을 했다고 했다.

A씨가 어머니의 음주와 공포 영화 비디오를 빌려오라고 했을 때 답답해서 어머니에게 전자 오락 게임을 가르쳐주었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배워서 게임으로 도박을 하게 되면서 나중에 수천 만원의 빚을 진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고 했다. 항상 어머니는 돈을 주면 마음대로 사용해서 돈이 없다고 손을 벌리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A씨기 결혼을 할 시점에서 어머니는 전화로써 너의 처가 집에서 돈을 얼마나 대주는지?를 묻는 질문에 A씨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어머니는 화가 나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 다반사였고 그럴 때에는 A씨가 어머니를 달래고 위로하고 항상 어머니를 돌보아왔다고 했다. 지금도 자주 어머니가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하면 A씨가 달래주는 편이라고 했다. 지금은 어머니는 술을 마시는 빈도수가 줄었고 조용한 편이라고 했다.

누나들이 결혼을 할 때 아버지는 빚 보증 때문에 할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친가 형제들에게 이전을 했는데 친가 형제들을 그들이 제산을 차지하고 돌려주려고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할아버지 재산을 아버지가 탕진 했다고 재산을 더 내 놓으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형제들과 관계가 다 끊어져 버렸고 유일하게 막내 삼촌이 제일 잘 살아서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막내 삼촌과 연결은 지속이 되고 있다고 했다.

누나들이 결혼을 할 때 돈이 없어서 아버지는 겨우 2천만 원-3천만 원 정도의 지원 밖에 할 수 없었고 올해 1월 달에 A씨가 결혼을 할 때 아버지는 1천만 원 정도의 지원을 해 주었다고 했다. A씨는 그것을 미리 알고 독립적으로 결혼 비용을 모아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A씨의 결혼에 지원 부족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누나들과의 A씨와 관계를 물었을 때 A씨는 큰 누나는 초, , 고교 시절에 공부를 잘 해서 성적을 잘 받았으나 수능에서 실패를 해서 대학은 고향에서 xx대학을 나왔지만 대학 졸업 후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수준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 약품 공금을 해 왔기 때문에 의사들을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나를 의사와 결혼을 시키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누나는 키는 167 정도 약간 큰 편이었고 인물이 못생긴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어떤 의사가 누나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아버지가 누나에게 의사에게 시집을 가라고 했을 때 누나는 반대를 했고 그것 때문에 어느 날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는 누나에게 덤벼들어서 때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뜯어 말렸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의사와 사귀어 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누나가 거부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화를 낸 것 같다고 했다. 누나는 이미 그 시점에서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아버지와 몸싸움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 누나는 그 사람과 결혼을 했고 그리고 매형은 수출입을 담당하는 회사에 근무를 하다가 최근에 퇴직하고 몇 년 전에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가족 전체가 이민을 떠났다고 했다.

작은 누나는 어린 시절부터 예민하고 공부를 잘 하지 못했는데 대학을 졸업 후에 학습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결혼 후에도 지금까지 학습지 일을 하다가 최근에는 매형과 함께 지난 주일에 새로운 음식점을 개업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A씨의 관계를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와는 대화가 잘 되지 않고 아버지는 항상 A씨를 지시하고 권위적이고 명령하는 스타일이고 아버지가 A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말을 하도록 들어주는 스타일이 아니고 지시하고 강압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A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는 A씨에게 아버지가 하고 있는 제약 회사에 취업을 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즉 아버지는 항상 A씨에게 원서만 넣으면 아버지가 알아서 할 터이니 합격은 보장해 놓은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런데 아버지는 몇 번의 서류 접수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했을 때 아버지가 A씨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분노했다고 토로 했다. 아버지의 친구들이 혹은 상사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아들의 취업을 보장하겠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아버지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힘도 없었다.

한번은 xx 제약 회사에서 서류 심사에서 통과를 해서1차 합격을 하고 면접 시험을 끝냈는데 다시 재차 면접을 한다고 통고가 왔고 다시 면접을 실시하는데 A씨의 차례에서 끝나 버렸고 시험은 불합격이었다. 아버지에게 떨어졌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라고 아들 A씨에게 화를 냈다. A씨는 아버지가 서류만 넣으면 다 된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는 내 몰라라 한다고 분노했다. 그런데 그 제약 회사가 특정 인물들을 뽑으려고 이미 정해 놓고 면접 시험을 보고 나서 다시 재 면접 시험을 다시 실시하게 되면서 처음에 면접 점수를 잘 받았지만 두 번째는 면접 시험을 A씨 앞에서 끝내 버린 것에 분노했다.

은행에서 근무를 하면서 A씨는 그곳에서 오래 근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처음부터 작정을 했었다. 그곳을 떠나게 된 것은 상사가 A씨에게 근무 시간 이외에 부당하게 명령하고 지시를 하는 것에 대해서 갈등이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은행을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만 두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아들이 은행에 근무를 한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은행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노발대발했다. 아버지가 A씨의 퇴사를 막기 위해서 때리고 밀치는 바람에 화가 나서 짐을 싸 들고 집을 나와서 서 큰 누나 집에서 며칠간 있다고 아버지가 데리러 왔을 때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몇 달 후에 은행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또 한 번의 집을 나온 것은 아버지와 갈등으로 아버지가 때리고 처벌을 하는 것에 분노해서 짐을 싸 들고 서울로 올라와 버린 것이 서울에서 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95평의 큰 아파트에서 방의 구조와 가족들의 방의 사용을 물었을 때 큰 누나, 작은 누나, 그리고 A씨가 방을 한 개씩 사용하고 그리고 부부 침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버지가 전용으로 사용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외도 이후에 부모님은 각자가 방을 따로 사용했고 어머니는 주로 거실에서 잠을 자고 생활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 TV, 욕실과 욕조 그리고 전화기 등의 모든 것을 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방에 들어가서 잘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식사 때만 나와서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이외에는 가족들이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는 아버지는 아파트 안에서 아버지의 방에서 휴대폰으로 식구들에게 전화로 연락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싸움을 하면 몸 싸움으로 치고 받고 서로 몸으로 싸운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흔들거나 어머니는 손톱으로 할퀴고 물고 그리고 물건들을 집어 던진다고 했다. 어떤 때는 서로 칼을 들고 싸우겠다고 해서 몇 번이나 칼을 가지려 가는 것을 말린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몸 싸움으로 싸울 때 누나들은 겁을 집어 먹고 벌벌 떨고 있었지만 주로 A씨가 어머니를 끌어 안거나 어머니를 안고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는 역할을 맞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점에서부터 어머니가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고 어머니가 환청과 환각 증세를 보이고 술에 취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비로 싸움을 벌려서 파출소에 붙잡혀 가면 아버지, 큰 누나와 작은 누나와 A씨가 함께 파출소 앞에 가서 아버지는 체면 때문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고 누나들을 겁을 집어 먹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고 A씨가 파출소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고 했다. 아버지와 누나들에게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A씨에게 떠 넘긴다고 분노하고 화가 났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그리고 아무도 어머니를 컨트롤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를 늘 달래고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항상 A씨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회사 일로 그리고 일로 바빴고 집에 오면 아버지 방에서 틀어 박혀서 나오지 않고 방에서 전화로 자녀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은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고 친가와 관계가 끊어져 있고 어머니도 친정과 결혼 후에 끊어졌고 술로써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일벌레로 늘 일에 몰두해 있었다고 했다. 지금도 일을 하고 있지만 (제약 회사에서 약물을 병원이나 의사들에게 공급)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고로 A씨가 따로 부모님의 생활 비용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회갑 기념일에 누나들에게 부모님에게 선물을 이야기를 했을 때 누나들은 발을 빼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고 했다. A씨는 아버지에게 50만원 어머니에게 50만원을 해 드렸으나 누나들을 서로 답함을 해서 각각 20만원씩을 하는 것을 보고 의논하지 않고 그들이 비밀로 하는 것에 화가 났다고 했다.

다음의 치료 회기 과정의 소개에서는 지금까지 12시간의 분석 치료 회기를 가지면서 A씨의 핵심 문제가 수면 위로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A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누나들과의 관계가 지금 현재의 A씨의 문제에 50% 이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스스로 밝힌 것에서 어린 시절의 가족관계에서 지금 현재의 문제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져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http://blog.daum.net/psychologyclinic/11048697